고양이의 냥냥펀치 한방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포충기
-벌레를 잡는 장치-
주로 가정이나 음식점에서
초파리를 잡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크기에 따라,
잡는 방식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꽤나 비싼 제품들도 솔찬히 팔린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나
겨우 보일 정도로 작지만,
하필이면 밥 먹을 때
곧 죽어도 음식으로 달려드는
그들이 싫어서.
나 몰라라 수백의 후손들을 남기고 떠나는
그들이 싫어서.
그래서 생겨난 발명품 포충기.
이 장치의 원리는 단순하다.
자외선 불빛이 그들을 유인한다는 것.
이 원리로 인해서,
그 아둔한 족속들은 바로 옆에 동료들이
얼마나 포획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달려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포획되는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그 수를 하루하루 헤아려보면서
그들의 브레이크 없는 번식능력에
다시 한번 학을 떼면서도,
한편으로는 돈값하나 톡톡히 한다고
뿌듯해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하긴, 후손들을 최대한 많이 남기도록
본능이 진화하느라,
위기에 대응하는 본능은
고양이의 냥냥펀치 한방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뜨거운 불빛에 제 몸이 타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달려들 정도로
하찮은 수준으로 멈춰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던 요즘 제품들은,
그 포획된 현장을 감추기 위해서 액자모양으로 디자인하여,
인테리어의 일부로 승화시킨 모델들도 있더라.
이는 어쩌면,
보기 싫은 건 없애버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사람들의 본능을 잘 이용한 발명품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초파리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포충기를 보고,
좋은 제품을 고르기 위해서 리뷰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포충기를 왜 찾는지를 보고,
단점을 최소화 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리뷰를 보는 것 같다.
뛰어난 발명가는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거나,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다거나,
심지어는 한정된 고급정보를 얻음으로 인해서 발명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들리는 수많은 불평불만들.
그 하나하나로부터
발명의 영감을 얻는다고 했던가.
'전화위복', 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주변사람들로부터 들리는 시시콜콜한 불평으로부터
새로운 영감의 씨앗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향한 불만들,
누군가가 해낸 일의 비평들,
심지어는 나를 향한 비난들조차도,
그 씨앗들의 자양분으로 삼아 보겠다.
이 양분으로 이성의 줄기를 두텁게 하여,
훗날 그 어떤 상황에 직면한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을 다독일 테다
나 자신을 응원할 테다.
나 자신을 사랑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