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기억을 다루는 본능
"치발도네"
'어떠한 규칙도 없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록하는 문화'
를 뜻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단지,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둔다.
형식이 없으니,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기록할 '노트'만 있다면.
지금이야 노트라고 하면 공기 중의 산소와 같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종이가 처음 발명되기 전 까지는 손바닥 만한
양피지 한 장을 찍어내는데,
한 사람이 꼬박 이틀 동안 심혈을 기울였어야 되었다.
그렇게 공들여서 만들었으니, 당연히 평민들은 쉽게 가질 수 없었다.
가질 수 없으니, 기록이라는 행위는 일상생활과 무관하였다.
다행히 종이가 보급되면서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기록이라는 사치를 부릴 수 있었고,
그 덕에 '치발도네'라는 문화가 꽃을 피웠다고 한다.
누군가는 아침을 왜 늦게 먹었는지,
그렇게 배가 고프면서도 왜 빵 한 조각만 먹었는지,
그러면서도 그 소박한 식사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걸 보는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웃고 있었다던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일기장부터 시작해서,
엄마가 저녁 전까지 방청소를 끝내라고 했다던지,
선생님이 구구단을 내일까지 외우라고 했다던지,
같은 반 상희가 주말에 산책하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던지와 같은
해야 할 일들을 적어놓기도 하고,
고양이수염이 풍성하다던지,
강아지가 점프하는 순간에 앞다리를 가위차기로 접는다던지,
보아맴의 혓바닥과 눈동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드리프트를 하고 있다던지와 같은
보이거나 보고 싶은 그림들을 그리고는 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누군가는 이번 달 품삯은 얼마를 받았는지,
바게트빵을 몇 개를 사 먹었는지,
부러진 삽과 다 떨어진 옷가지를 얼마에 샀는지,
그래서 남은 품삯이 얼마이고,
이걸 누군가한테 빌려줘서 언제 얼마의 이자를 받아낼 예정인지와 같은 회계장부로 쓰기도 했으며,
일부의 사람들은 머릿속만으로는 도저히 끌어낼 수 없는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찾아낸다던지,
하늘에 떠 있는 행성들의 궤도를 꼼꼼하게 기록해서, 타원궤도법칙을 찾아낸다던지와 같은 세상의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는데 쓰기도 했다.
이러한 대단한 기록물들에 홍수처럼 노출되어 살게 되면서,
단순한 일기나 낙서등과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하찮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소소한 일기장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 종이문화사의 전문가 '롤런드 앨런'이 집필한 그의 저서 "쓰는 인간"의 일부분이 떠올라 기억나는 대로 남겨본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 이상 의식을 잃어버린 환자들 대부분이 의식을 차리고 완치가 되고 나서도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트라우마가 있다.
예컨대, 간호사들이 나에게 해로운 물질을 투여할지도 모른다던지,
의사들이 나를 날카로운 도구로 공격하는 꿈을 꾼다던지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병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평생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고통을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환자들을 안쓰럽게 여긴 어느 병원의 간호사들이 이들만을 위해서 일기를 썼다.
아침에 기침을 하고 나서 표정이 편해졌다던지,
멀리서 찾아온 친구가 머리맡에 꽃병을 두고 갔다던지,
우연히 틀어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의 박자에 맞춰서 손가락이 반응했다던지와 같은 것들이다.
그 어떠한 의학적 용어 없이, 환자의 상태를 관심 갖고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다.
그리고는 환자가 의식을 찾고 완치되어 병원을 떠날 때, 그 일기를 선물로 전했다고 한다.
그 후, 일기를 전달받았던 거의 모든 환자들은 놀랍게도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다.
이로 인해서, 인간의 뇌는 끊어지고 비어진 기억들 사이사이를 (비록 사실과 다를지라도) 어떻게 해서든 메꾸려는 본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종의 기원을 쓴 유명한 저자 '찰스 다윈'은 종종 다음과 같은 베이컨의 말을 권고했다.
'읽기'는 완전한 사람을 만들고,
'회담'은 준비된 사람을 만들며,
'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물론 사람은 100퍼센트 완전하거나, 정확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읽기나 쓰기는 의미 없는 거 아니냐는 생각 또한 경계해야 할 이분법적인 생각이 아닐까 한다.
나는 오늘, 정확함 한 스푼을 채웠기를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