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만큼 가치 있는 강력한 연결고리
"초역"
'직역과 의역을 초월한 번역의 줄임말'
번역가가 원작자의 글 그대로를 번역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생각에 맞게 번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언뜻,
직역과 의역이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But, I am not saying literal translation is trivial.'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직역은 쉬운 것이라고.
(일단은 이 해석이 어색하더라도 양해주시기를..)
특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널에 기고한 논문을 이해할 때에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생길 염려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직역이 필요하다.
심지어는 직역 자체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이를 승화시켜서,
한국어는 은/는/이/가 와 같은 '조사'에 지배당하고,
영어는 단어들이 나열된 '순서' 자체에 지배당한다는 기준선을 그어서,
'직독직해'라는 새로운 독해방식을 제시한 어느 스타강사 덕분에,
그동안 서로 다른 어순에만 초점을 둬서 크나 큰 고통을 겪었던 수많은 수험생들에게는
신선한 단비가 내렸던 역사도 있지 않은가.
'Let me emphasize one more, I am not saying literal translation is trivial.'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직역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의역 또한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번역가의 입장에서,
작가가 가진 고유의 주파수를 독자의 주파수에게 정합시켜 준다는 근사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역'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워서 번역을 했다는 것은
번역가 당사자가 작가의 글 내용뿐만 아니라,
글을 쓰던 당시 그의 마음상태는 어떠하였는지,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지,
더 나아가서는 평소에 그가 지닌 사상은 무엇인지까지도 깊이 이해하였다고
(다소 자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당당하게 밝힌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는 기본적으로, '직역', '의역', '초역' 등을 통틀어서,
어떠한 형태의 번역이든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가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부터 깨달음이나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나아가서는 반대로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감동적이고 고무적 인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어떠한 형태로 번역되었는지에 관계없이,
명확한 기준을 유지한 모든 번역가분들을 존중한다.
다시 초역의 얘기로 돌아가서,
초역의 대상은 보통, 과거 선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기록물들이 다뤄진다.
가령, 역사 속에서나 존재하는 '특정 위인들의 노트'에서부터,
'부처의 말'이나, '성경구절' 등에 이르는 것들 말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시간이 흘러 여러 세대를 거쳐감에 따라서,
일상에서 사용빈도가 줄어들었거나 사라져 버린 단어나 표현들로 채워져 있다 보니,
내용을 읽는다는 것 자체부터가 난해하기 때문에 주로 초역의 대상으로 선정되는 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난해하더라도, 그들의 지혜를 일부라도 배울 수만 있다면,
배워서 일상에 현명하게 활용할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혼이 담긴 초역본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들을 보면서,
과거 현인들과 현대의 우리 사이에는 지나온 시간만큼 가치 있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음에 감사한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진 나를,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진 우리가 될 수 있는 연결고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