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구나
"북틈"
'책을 읽을 틈을 내보자'
라는 뜻의 회사 동호회 이름이다.
'독서는 좋은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지적 생명체들이 공감할 법한 명제이다.
그리고 나 또한, 이 명제가 참이라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에 대한 수많은 이유들을 쉬지 않고 몇 시간 동안 떠들수도 있다.
물론,
독서를 넘어서서, 스스로 글을 쓰는 작가분들이 모여있는 이 세상에서는
독서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열창한다는 게,
얼마나 뻔하고 지루한 얘기일지 가늠해 보면,
도대체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참으로 식상하지 아니한가.
마치,
태양이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진다는 말과 같이,
영양가 하나 없는 대화들, 예컨대,
'일찍 왔네?' ,
'밥 먹었어?' ,
'또봐~' ,
와 같은 상투적인 인사말과 하등 바를 바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뻔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남겨보려 한다.
뻔하다는 것은 반대로 진리에 가깝다는 말이며,
이는 곧 너무나도 당연해서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으면 의식에서 멀어져 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작심삼일'
'마음을 먹어도 길어야 삼일이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에게 근성을 심어주기 위한 격언인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며, 꾸준하지 못함을 자책하는 개인에게 주는 위안인지 모를 말이지만.)
나에게는 새해가 찾아올 때마다, 다짐하는 목표가 있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
그래서 신중하게 책을 고르고, 매일 시간을 정해서 책을 읽겠다고 계획을 세운다.
아침에 일어나면 읽어야지,
퇴근하면 읽어야지,
잠들기 전에 읽어야지,
5분이던, 10분이던,
단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이렇게 해봐야지.
그러곤, 연말이 찾아올 때마다 머릿속의 두 자아가 찾아온다.
먼저 찾아오는 자아는 반성하는 나 '반성이'이다.
'하아, 올해 내내 한 권 읽었네.
올해도 목표달성은 실패구나.
벌써 몇 년째야,
내 근성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나하고 책은 안 맞는 건가.'
그렇게 이 '반성이'는 반성에서 자책으로 마무리하면서 한숨만 푹푹 쉰다.
그다음에 찾아오는 두 번째 자아는 합리화하는 나 '무난이'이다.
'하나라도 읽은 게 어디야.
목표라도 세웠으니, 읽기 비슷한 걸 시도라도 한 거지
1년 내내 책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이 둘 이 서로 신나게 지지고 볶다가 몇 년 만에 새로운 결론을 도출했다.
그럼 아얘 회사에 책 읽기 동호회라도 만들어버리자!
일단 벌려놓으면 뭐든 되겠지!
참 대책 없는 발상이다.
회사 동호회를 활동하는 것도 귀찮은데, 직접 만들어서 운영해 보라니.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사내 동호회 신설 규칙을 뒤져보고,
동호회 운영 회칙을 만들고,
가입 회원을 모으고,
매달 정모에,
분기마다 보고서 제출까지.
.
.
.
그런데.... 하고 있다.
2월에 시작해서 어느덧 8월 말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그렇게 "북틈"이 처음 회원 7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12명으로 불어나 있다.
그리고는 새삼 깨닫는다.
'인간은 참 재밌는 동물이구나?
혼자서는 몇 년을 다짐해도 못하더니,
몇 명이 모이면 단번에 해내버리다니?'
라던지,
'이러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구나?
그 귀찮은걸 매달 하더니,
이제는 한 달에 한 권을 읽어도 두세 번은 더 반복해서 읽지를 않나,
내용이 마음에 안 드는 책이면 한 번만 정독하고 다른 책을 또 사서 읽고 있네?'
라던지 말이다.
그렇게 6달 만에 벌써 한번 이상 정독한 책만 12권이 넘었다.
나아가서는 언제부터인지, 회사 안에서 독서 전도사가 되어버렸다.
한 달에 열 권도 넘게 읽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한 권 읽는 게 무슨 대단한 자랑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미루고 미루었던 작가활동까지 시작한 걸 보면
언뜻, 나라는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것 자체를 못 견뎌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물론, 올해 새롭게 습관처럼 붙어버린 이 관성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주변에 단호하게 권유할 수 있다.
'독서는 정말 좋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