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용기

세상을 먼저 보여줄 수 있다면

by 로하

"우리 장미랑 친구 할래?"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많았고, 오후가 되면 동네에서 아이들이 저마다의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실컷 땀 흘려 놀다가 "집에 와서 밥 먹어~!"라는 엄마의 외침이 들려오면 귀가하는, 바로 '응답하라 1988'에서나 보던 그 장면들이 매일 펼쳐지곤 했다.


그 장면 속의 나 보다 조금 더 어린 시절, 지금의 내 아이 또래 나이 정도 됐을까?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꼬마 윤장미'의 장면을 떠올리면 나 대신 동네 꼬마에게 말 붙여주던 엄마가 함께 떠오른다. 같이 놀고 싶은데 선뜻 나서지 못하고 쭈뼛쭈뼛 그 주위만 맴도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겠지. 스스로 친구들 틈 사이로 물 흐르듯 들어가 함께 어울리는 딸의 모습을 원하셨겠지만, 꼬마 윤장미는 그렇지 못했다. 혼자 노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함께 놀자고 말 붙이는 건 더욱 어려운 소심쟁이. 그래서 그 시절 나의 첫 친구, 교우관계는 늘 엄마의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우리 장미랑 친구 할래?"


아이가 5살쯤 되었을 때, 하루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한 남매가 근처에서 모래 놀이를 신나게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2,3학년쯤 되어 보이는 누나가 5,6살 정도로 보이는 남동생을 카리스마 있게 리드하며 집에서 챙겨 온 모래 놀이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는데, 내가 봐도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자꾸만 그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나의 딸아이. 함께 놀고 싶은 눈치였다.

"엄마, 나도 저 언니랑 같이 놀고 싶어"

"그럼 함께 놀아도 되냐고 물어봐~"

"엄마가 말해줘"

"엄마가 같이 놀 게 아니라 네가 같이 놀 건데, 네가 말해야지, 엄마가 어떻게 말해"

"엄마가 용기를 내서 말해보면 되잖아"


용기를 내라니! 엄마가 용기를 내라니!

엄마가 '어떻게' 말하라는 거냐는 문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용기를 내어서' 말해 보란다.

그 한 마디에 빵 터져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것이 마치 수십 년 전 꼬마 윤장미를 보는 것 같았다. 혹시 그때 꼬마 윤장미 대신 매번 말을 걸어주던 우리 엄마도 사실은, 어쩌면 대단한 용기를 내었던 건 아닐까? 사뭇 궁금해졌다.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숙소이자 학원이었던 호텔 라운지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딸이 K-POP을 너무 좋아하고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우리 딸과 친구를 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나는 K-POP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저 한국인인 일반 여자 사람일 뿐인데? 그 엄마는 한국을 사랑하는 딸이 알고 지낼 수 있는 한국인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딸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그 옛날의 우리 엄마와 비슷한 마음이었겠지 싶다. 그 엄마 역시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용기를 내었던 걸 테다.

"Sure! Why not?"

옆에서 수줍게 바라보던 소녀와 페이스북 ID와 메일주소를 교환하고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엄마의 용기는 사실 본보기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고 친구가 되어 재미있게 어울려 놀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네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앞으로도 내 아이가 친구를 사귀고 그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겠지만, 가끔을 그 시작을 만들어 준 엄마의 용기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 엄마의 개입 없이도 친구도 잘 사귀고 사회생활도 곧잘 해내는 지금의 내가, 꼬마 윤장미 시절에 엄마가 대신 건네주었던 한 마디를 떠올리면 늘 든든한 것처럼, 내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의 용기는 너를 대신해 말을 걸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엄마가 뒤에 있을 테니 너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길 응원한다는 메시지라는 것을 알아주면 더욱 좋을 것 같고.


작가의 이전글꽃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