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로그인 ​#14화: 시스템 종료, 의식의 수평선

나라는 외투를 벗어던지는 찰나

by 있는그대


​구급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며, 대신 수술실 특유의 건조하고 서늘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바로 전의 아스팔트 위가 뜨겁고 비릿한 지옥이었다면, 이곳은 모든 감각이 정제된 진공 상태의 우주 같았다. 천장에 달린 거대한 무영등이 하얀 심연처럼 나를 내려다보았다.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그 빛 뒤로, 마스크를 쓴 의료진들의 분주한 손길이 소음 없는 잔상을 남기며 스쳐 지나갔다.


​"환자분, 이제 마취제 들어갑니다. 천천히 숫자를 세세요. 열, 아홉..."
​의사의 무심한 목소리와 함께 내 팔의 혈관을 타고 서늘한 액체가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내 몸속의 주 전원을 하나씩 꺼뜨리는 정교한 명령어가 아니라, 마치 투명한 잉크가 물속에 퍼지듯 내 의식을 잠식해 들어가는 고요한 침공이었다. 심장 박동은 느려졌고, 끝까지 붙들고 있던 현실의 감각들이 젖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숫자를 세는 대신, 내 존재가 흐릿해지는 그 찰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것은 내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가장 거대한 실험이자 관찰이었다.

​시야 한구석, 푸른색 시스템 창이 희미하게 점멸했다.


​[상태 알림: 의식 소멸 단계 진입]


​부처님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바로 전의 서늘함과는 다른, 마치 깊은 밤의 호수처럼 고요하고 아늑한 음성이었다.
​"보아라. 네가 '나'라고 굳게 믿었던 의식조차, 약물이라는 작은 조건 하나에 이토록 쉽게 해체된다. 이것이 바로 무상(無常)이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조건에 따라 잠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사라져가는 것들 중에 진실로 네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심장 소리가 멀어졌다. 가슴이 터질 듯 뛰고 숨이 가빴던 육체적 공포들도 이제는 남의 집 담벼락 너머에서 들리는 흐릿한 소음처럼 느껴졌다. 마취제가 뇌세포의 길목을 하나씩 잠재울 때마다, 내가 평생을 걸어 지켜오려 했던 자존심, 상처받았던 기억들, 부장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와 친구에 대한 비겁한 열등감이 한낱 연기 조각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 결국 나라는 존재는 이토록 가벼운 흐름이었던가.'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지독한 갈증 뒤에 차가운 물을 들이켠 것 같은 해방감이 밀려왔다. '나'라는 무겁고 낡은 외투를 드디어 벗어 던지는 기분이었다. 시스템은 이제 마지막 메시지를 띄웠다.


​[경고: 주 전원 차단 임박. 소멸을 수용하시겠습니까?]


​부처님이 미소 짓는 듯한 서늘하고도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싸 안았다.
"로그아웃은 끝이 아니다. 잠시 멈추어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일 뿐. 어둠 속에서도 관찰하는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네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그 텅 빈 자리가 진정한 너다."
​내 시야를 가득 채웠던 무영등의 하얀 빛이 아주 작은 점이 되어 멀어졌다. 나는 그 빛을 쫓지 않았다. 대신 그 빛이 사라진 자리의 고요함을 선택했다. 마지막 데이터가 내 가슴 깊은 곳에 기록되었다.


​- 마지막 수신 감각: 평온.
​암전.
의식의 수평선 너머로 내가 사라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소멸의 순간에 나는 가장 생생하게 깨어 있었다. 내가 없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아는 '무아(無我)'의 감각. 시스템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 나는 생애 처음으로 조건 없는 완벽한 자유를 맛보았다.
​"잠시 쉬어라. 다시 눈을 뜰 때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너를 기다릴 것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음성이 멀어지는 의식의 끝자락을 붙잡았다. 그것은 죽음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새로운 재부팅을 위한 성스러운 정지였다. 나는 그 고요한 평화 속으로 기꺼이 침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