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로그인 #13. 사이렌 소리 너머, 시스템 가동

너는 지금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by 있는그대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행복의 가성비를 계산하며 웃었다. 인스타그램 속에 박제된 타인들의 화려한 픽셀 성벽을 허물고, 비로소 내 낡은 방의 온전한 주인이 된 기쁨은 달콤했다. 마음 하나 고쳐먹는 것이 이토록 큰 수익률을 내는 장사라면, 앞으로의 삶은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공략집을 막 손에 넣은 기분이었다. 나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을 보며,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의 핸들을 제대로 잡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가장 방심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비릿한 이빨을 드러낸다.


​끼이익—!
​고막을 찢는 타이어 마찰음이 고요한 오후의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핸들을 꺾을 새도 없었다. 거대한 충격과 함께 세상이 수십 바퀴 거꾸로 뒤집혔다. 유리창이 깨지며 쏟아지는 파편들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내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둔탁한 금속음이 내 몸을 짓눌렀고, 이내 차가운 아스팔트의 거친 질감이 뺨에 닿았다. 뒤집힌 차체 사이로 휘발유 냄새와 타이어 타는 매캐한 연기가 스며들었다.


​정적이 찾아온 찰나, 뒤늦게 밀려온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경계를 타고 뇌로 직결되는, 압도적이고도 원초적인 파괴의 통증이었다. 다리는 이미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복부 어디선가 뜨거운 것이 울컥거리며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부처님... 살려주세요... 제발..."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목구멍 안쪽에서 본능적으로 신을 찾았다. 기적을 바랐고, 이 지옥 같은 고통을 마법처럼 지워줄 누군가를 간절히 갈구했다. 이전에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아있음이 흑자’라고 말해주던 그 다정한 위로는 간데없었다. 내 흐릿한 시야 위로 번쩍이며 떠오른 건, 수술실 무영등보다 차갑고 시린 푸른색 시스템 레이어였다.


​[위급 상황 발생: 시스템 강제 가동]
[신체 데이터 정밀 스캔 중...]


​"신에게 매달려 너의 주도권을 넘기지 마라."
​부처님의 목소리는 벼려진 칼날처럼 서늘했다. 아까의 내 비명이 부끄러워질 만큼 냉정한 어조였다.


​"이 고통은 세포가 파괴되며 뇌로 보내는 정직한 자연의 신호일 뿐이다. 나 또한 춘다의 공양을 먹고 지독한 복통에 시달렸으며, 노환으로 무너지는 육체를 낡은 수레라 부르며 견뎠다. 자연법칙(Dharma) 앞에 예외란 없다. 기적을 구걸하며 네 운명을 타인에게 맡기지 마라. 지금 네 몸에 일어나는 현상을 해킹해라."


​동시에 내 몸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슴은 망치질을 하듯 두근거렸고, 폐부 깊숙한 곳까지 공기가 닿지 않아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예전 같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아!'라며 절규했겠지만, 시야에 뜬 건조한 알림창이 나를 다독였다.


​[자율신경계 모니터링: 심박수 158bpm / 호흡수 급증]


​"보아라. 가슴이 뛰고 숨이 가쁜 것은 몸이 생존하기 위해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존 반응이다. 두려움은 그 반응에 네 마음이 덧씌운 가상의 그림자일 뿐이다.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하지 마라. 대신 가슴의 두근거림과 거친 숨소리를 그저 있는 그대로 이름 붙여 바라보아라."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내 상태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심장이 뜀', '숨이 가쁨', '불안이 일어남'. 신기하게도 '무서워 죽겠다'가 아니라 '신체 반응이 가속되고 있음'을 직시하자, 그 거대했던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하나의 현상으로 보였다. 가슴의 요동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그 박동이 나를 파괴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단지 내 몸이 살기 위해 보내는 치열한 신호였다.


​"육체의 비명과 본능적인 공포는 피할 수 없는 제1의 화살이다. 그건 이 우주의 물리 법칙이니 겸허히 수용해라. 하지만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는 억울함, 그 제2의 화살은 네가 네 가슴에 스스로 쏘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오염물로 지금의 현상을 판단하지 마라. 너는 지금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일침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 냄새와 비명 소리가 가득한 아스팔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라는 주어를 지워보았다. 나는 피 흘리며 울부짖는 가련한 피해자가 아니라, 통증과 공포라는 감각의 파도를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처리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었다.


​관찰자가 되자 고통과 나 사이에 아주 얇은, 하지만 결코 좁혀지지 않는 투명한 막이 생겼다. 그 틈 사이로 서늘한 이성이 흘러들었다. 다리는 여전히 불에 타는 듯 뜨거웠지만, 내 마음의 장부는 여전히 ‘평온’이라는 기적적인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다급한 발소리가 뒤섞였지만, 나는 내 시야를 가득 채운 생존 확률 데이터만을 무심하게 응시하며 조용히 다음 숨을 내뱉었다.
​"시스템... 다음 단계로 진입해."
​나는 이제 고통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적이 아니라, 명확한 인식으로 나를 구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