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로그인 ​# 12. 불안을 결제하는 사람들

우리는 왜 타인의 시선이라는 단두대에 매일 목을 올리는가

by 있는그대

​지난번 부장님의 독설 뒤에 숨겨진 '비명'을 듣고 나서, 타인의 화살을 내 가슴에 직접 박아넣던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나를 공격하는 화살은 피할 줄 알게 되었는데, 나를 유혹하는 타인의 화살 앞에서는 다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부처님, 솔직히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깨달음은 깨달음이고, 배 아픈 건 배 아픈 거잖아요."

​나는 다시금 스마트폰 액정 속으로 빠져들며 중얼거렸다. 금요일 밤 11시, 침대 위에서 무심코 켠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독한 매운맛이었다.


예전에 내 영혼을 사정없이 후려쳤던 대학 동기 ‘A’의 피드는 그사이 더 화려해져 있었다. 이번엔 호텔 스위트룸의 거대한 통창 너머로 반짝이는 시티뷰다. 테이블 위엔 이름조차 읽기 힘든 빈티지 와인이 놓여 있고, 그 곁엔 무심한 듯 놓인 수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가 번쩍인다.
​"저게 진짜 부자의 삶이든, 아니면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저 사람이 누리는 저 ‘급(Grade)’이라는 게, 컵라면 국물이나 들이키는 제 처지랑은 아예 다른 우주에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고 속만 쓰립니다. 부처님이 로그인하셔도 이런 건 해결 안 되죠?"
​내 투덜거림에 부처님이 비웃음 섞인 시스템 비프음을 한 번 길게 울리셨다.
​"네가 보는 건 저들의 '편집된 픽셀'이지 '날것의 마음'이 아니다. 자, 내 눈을 빌려줄 테니 저 화려한 성벽 안쪽을 직접 들여다보아라.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시스템 알림: 신통력(神通力) 카테고리 - '타심통(他心通)' 프로세스 시작]
[Target: User 'A' / Deep Mental Scan Loading... 100%]


​순간, 스마트폰 액정 위로 반투명한 푸른색 레이어가 겹쳐졌다. 이전에 내 눈을 멀게 했던 다이아몬드의 광택과 고급 와인의 빛깔이 서서히 걷히고, 그 자리에 차가운 데이터 로그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짐작하는 게 아니었다. 이건 부처님의 '타심술'이 타인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날 것 그대로의 정보였다.


​[타겟 ‘A’의 실시간 심리 데이터]
​현재 아만(我慢) 수치: 96% (우월감으로 불안을 억누르는 중)
​주요 알고리즘: ‘격차 확인을 통한 안도’
​무의식 로그: "이번 모임에서도 내가 제일 비싼 시계를 차야 해. 그래야 쟤들이 나를 우습게 안 보지. 사실 이번 달 리스료가 감당이 안 되지만... 상관없어. 일단 올려야 해. 사람들이 내 ‘급’을 인정해줘야 비로소 숨이 쉬어지니까. 제발, 좋아요 좀 눌러줘.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너희보다 위에 있다고 확인시켜달란 말이야!"


​"보이느냐? 남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에서만 안도를 얻는 마음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행복 제어권을 타인의 눈동자에 통째로 저당 잡혔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차갑게 긁었다.
​"저 친구가 진짜 부자인지 아닌지는 데이터상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저 사진이 ‘나는 너희와 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지. 진짜 평온한 자는 담장을 높게 쌓아 자신이 안에 있음을 알리지 않는다. 저토록 요란하게 급을 나누는 건, 사실 자신이 그 급에서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는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이다. 저 과한 소비는 즐거움이 아니라, 추락하지 않기 위해 지불하는 ‘불안세(Anxiety Tax)’인 셈이지."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우리는 타인의 눈동자라는 단두대 위에 매일 스스로의 목을 올리고 있었다. 진짜 부자라면 그저 여유롭고 행복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타심술이 보여준 진실은 기괴했다. 더 높은 곳에 있을수록 추락의 공포는 비례해서 커졌고, 그 공포를 가리기 위해 더 높고 화려한 ‘픽셀의 성벽’을 쌓으며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용도를 넘어선 소비와 과시 뒤에는 언제나 ‘남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운 가련한 나’가 숨어 있단다. 너는 컵라면을 먹으며 자유로운 밤을 보낼 것이냐, 아니면 수억 원짜리 시계를 차고 타인의 평가라는 단두대 위에 매일 목을 올릴 것이냐?"


​부처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어 내 방 안을 둘러보았다. 널브러진 빨래와 치우지 못한 설거지. 여전히 초라한 풍경이었지만, 적어도 여기엔 누군가에게 ‘급’을 증명하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숨 막히는 노동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인스타그램의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이전에 아프게도 내 가슴에 깊숙이 박혔던 질투라는 화살이, 비로소 싱거운 안도로 변해 툭 떨어졌다. 남의 인생이라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비참한 들러리를 서는 대신, 내 방의 소박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나는 처음으로 온전한 주인이 되었다. 화려한 픽셀은 없었지만, 이곳엔 숨 막히는 증명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고요함이 나를 감싸 안았다.

​잠들기 전, 부처님이 내 입술을 빌려 마지막 로그를 남기셨다.

​"남의 성벽이 높다고 부러워 마라. 성벽이 높고 견고할수록, 그 안의 포로는 더 지독하게 외로운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