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타인의 시선이라는 단두대에 매일 목을 올리는가
지난번 부장님의 독설 뒤에 숨겨진 '비명'을 듣고 나서, 타인의 화살을 내 가슴에 직접 박아넣던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나를 공격하는 화살은 피할 줄 알게 되었는데, 나를 유혹하는 타인의 화살 앞에서는 다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부처님, 솔직히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깨달음은 깨달음이고, 배 아픈 건 배 아픈 거잖아요."
나는 다시금 스마트폰 액정 속으로 빠져들며 중얼거렸다. 금요일 밤 11시, 침대 위에서 무심코 켠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독한 매운맛이었다.
예전에 내 영혼을 사정없이 후려쳤던 대학 동기 ‘A’의 피드는 그사이 더 화려해져 있었다. 이번엔 호텔 스위트룸의 거대한 통창 너머로 반짝이는 시티뷰다. 테이블 위엔 이름조차 읽기 힘든 빈티지 와인이 놓여 있고, 그 곁엔 무심한 듯 놓인 수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가 번쩍인다.
"저게 진짜 부자의 삶이든, 아니면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저 사람이 누리는 저 ‘급(Grade)’이라는 게, 컵라면 국물이나 들이키는 제 처지랑은 아예 다른 우주에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고 속만 쓰립니다. 부처님이 로그인하셔도 이런 건 해결 안 되죠?"
내 투덜거림에 부처님이 비웃음 섞인 시스템 비프음을 한 번 길게 울리셨다.
"네가 보는 건 저들의 '편집된 픽셀'이지 '날것의 마음'이 아니다. 자, 내 눈을 빌려줄 테니 저 화려한 성벽 안쪽을 직접 들여다보아라.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시스템 알림: 신통력(神通力) 카테고리 - '타심통(他心通)' 프로세스 시작]
[Target: User 'A' / Deep Mental Scan Loading... 100%]
순간, 스마트폰 액정 위로 반투명한 푸른색 레이어가 겹쳐졌다. 이전에 내 눈을 멀게 했던 다이아몬드의 광택과 고급 와인의 빛깔이 서서히 걷히고, 그 자리에 차가운 데이터 로그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짐작하는 게 아니었다. 이건 부처님의 '타심술'이 타인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날 것 그대로의 정보였다.
[타겟 ‘A’의 실시간 심리 데이터]
현재 아만(我慢) 수치: 96% (우월감으로 불안을 억누르는 중)
주요 알고리즘: ‘격차 확인을 통한 안도’
무의식 로그: "이번 모임에서도 내가 제일 비싼 시계를 차야 해. 그래야 쟤들이 나를 우습게 안 보지. 사실 이번 달 리스료가 감당이 안 되지만... 상관없어. 일단 올려야 해. 사람들이 내 ‘급’을 인정해줘야 비로소 숨이 쉬어지니까. 제발, 좋아요 좀 눌러줘.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너희보다 위에 있다고 확인시켜달란 말이야!"
"보이느냐? 남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에서만 안도를 얻는 마음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행복 제어권을 타인의 눈동자에 통째로 저당 잡혔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차갑게 긁었다.
"저 친구가 진짜 부자인지 아닌지는 데이터상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저 사진이 ‘나는 너희와 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지. 진짜 평온한 자는 담장을 높게 쌓아 자신이 안에 있음을 알리지 않는다. 저토록 요란하게 급을 나누는 건, 사실 자신이 그 급에서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는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이다. 저 과한 소비는 즐거움이 아니라, 추락하지 않기 위해 지불하는 ‘불안세(Anxiety Tax)’인 셈이지."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우리는 타인의 눈동자라는 단두대 위에 매일 스스로의 목을 올리고 있었다. 진짜 부자라면 그저 여유롭고 행복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타심술이 보여준 진실은 기괴했다. 더 높은 곳에 있을수록 추락의 공포는 비례해서 커졌고, 그 공포를 가리기 위해 더 높고 화려한 ‘픽셀의 성벽’을 쌓으며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용도를 넘어선 소비와 과시 뒤에는 언제나 ‘남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운 가련한 나’가 숨어 있단다. 너는 컵라면을 먹으며 자유로운 밤을 보낼 것이냐, 아니면 수억 원짜리 시계를 차고 타인의 평가라는 단두대 위에 매일 목을 올릴 것이냐?"
부처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어 내 방 안을 둘러보았다. 널브러진 빨래와 치우지 못한 설거지. 여전히 초라한 풍경이었지만, 적어도 여기엔 누군가에게 ‘급’을 증명하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숨 막히는 노동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인스타그램의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이전에 아프게도 내 가슴에 깊숙이 박혔던 질투라는 화살이, 비로소 싱거운 안도로 변해 툭 떨어졌다. 남의 인생이라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비참한 들러리를 서는 대신, 내 방의 소박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나는 처음으로 온전한 주인이 되었다. 화려한 픽셀은 없었지만, 이곳엔 숨 막히는 증명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고요함이 나를 감싸 안았다.
잠들기 전, 부처님이 내 입술을 빌려 마지막 로그를 남기셨다.
"남의 성벽이 높다고 부러워 마라. 성벽이 높고 견고할수록, 그 안의 포로는 더 지독하게 외로운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