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배경을 모티브로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이나 영화, TV 드라마는 늘 인기다. 이른바 스타강사로 불리는 설민석, 최태성 씨 등이 역사 얘기를 재밌게 강의할 때는 곧잘 빠져들곤 한다. 최근 강감찬 장군을 주연으로 한 고려거란 전쟁 드라마도 시청자들이 즐겨보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 중에 하나가 역사적 진위 여부와 그에 따른 학파 간 논쟁이다.
역사적 사실은 하나일 텐데 왜 논쟁이 일어날까. 학창 시절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조금씩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왔고 각자의 역사관과 가치관에 따라 사건을 재해석한 것이다. 때로는 부풀리고 때로는 삭제하고 가끔은 날조도 스슴지 않고.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과목 중 한국사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 자료가 너무 없다. 우리의 역사를 중국의 고서를 통해 옅본다는 것이 창피하다. 왜 우리 선조들은 중국처럼 고대사를 상세하게 기술하지 않았을까. 원래 우리는 기록에 관심이 없는 민족인가. 중국의 고서인 구당서에는 '고려 ( 고구려 )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를 시작으로 매우 거칠고 야만적인 부족으로 기술했다. 과연 사실일까.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답답하다.
나의 고정관념은 조선시대 기록물을 보면서 확 바뀌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상세한 기록에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승정원일기는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비교하면 청와대와 국회에서 기록하는 공식업무일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방대한 자료에 머리가 숙여질 정도다. 웹서비스로 손쉽게 접근해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역사와 사건을 기술하는데 관심이 많았고 정성을 쏟아 상세히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주류 역사 학자들은 큰 전쟁 통에 대부분의 우리 고대사 자료들이 화재로 불타버렸다고 주장한다. 많은 건물들이 목조로 지어졌고, 책 또한 종이로 만들어졌으니 화재에 취약했을 것이다. 그런데 수천 년간 기록한 그 많은 기록물들이 과연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을까. 글쎄.
아마도 아닐 것이다. 중국 진의 시황제가 시행한 분서갱유처럼 우리도 어느 지배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 사대 외교 등 ) 고의로 불태우라고 하지 않았을까. 의도적으로 없애지 않는 이상 우리 민족의 역사 기록에 대한 애착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이렇게 고대사의 흔적이 없진 않을 것이다. 상상과 공상이 생활화된 내 체질상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구심이 든다. 분명히 우리 고대의 선조들은 기록을 했을 것이다.
우리 역사 인식에는 정치권의 진보와 보수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강단 사학과 민족 사학의 의견 대립만 치열할 뿐이다. 간간히 출판되는 역사 소설을 숨죽여 읽으면서 우리 선조들의 참 역사가 더욱 궁금해진다. 중국의 수와 당이 이른바 중원을 통일한 후에 왜 고구려를 쳐들어 왔을까. 수와 당의 유일한 대항마가 고구려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강한 민족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륙 백제! 대륙 신라! 공상이 아닌 실제 우리의 역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은 우리 동이족의 치우천황까지도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우기면서 동북공정을 꾀하고 있다. 일본은 틈만 나면 근현대사까지 역사 왜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넋 놓고 있다간 우리 조상까지 외국으로 팔려갈 지경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의 참 역사를 밝히는데 종교계와 정치권도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각 집단의 이권 만을 내세워 우리의 역사를 폄하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
사진 by 해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