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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Sep 13. 2024

시험

관광통역안내사

지난주에 관광통역안내사 1차 필기시험을 봤다. 시험 장소는 여의도에 있는 윤중중학교였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아내가 태워주고 공항철도와 9호선 급행을 타는 노선이었다. 나 혼자 어디를 갈 때면 길치인 내가 아내는 늘 불안한 모양이다. 미리 가는 길을 알아본 후 여러 번 설명을 하고 또 카톡에 가는 길을 남겼다.


공항철도로 김포공항역까지는 바깥 풍경을 구경하면서 잘 왔다. 9호선으로 갈아탔는데 빈좌석이 많았다. 아마도 토요일이라서 출근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모퉁이 자리에 앉아 기출문제지를 가방에서 꺼냈다. 정차역을 여러 번 힐끗힐끗 쳐다보며 내려야 할 여의도역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문제지에 집중하느라 결정적인 순간에 정신을 놓은 것 같다. 여의도 다음 역인 노량진역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걱정한 일이 터졌다.


길치 특성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번 길을 잃으면 정신을 못 차린다. 지하철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나온 내 주위를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걱정할까 봐 그만뒀다. 최대한 침착하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용기를 쥐어짜 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길을 물었다. 운이 좋았다. 맞은편으로 가는 길을 알아냈고 여의도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6번 출구로 나가라는 아내의 카톡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한참 올라간 후 나타난 바깥 풍경은 한적했다. 가방을 한쪽으로 메고 스마트 폰을 꺼내 길 찾기를 하는데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았다. 길가에서 몇 분을 그러고 섰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였다.

' 윤중중학교 갑니까? 앞으로 곧장 가다가 길이 없어질 때즈음 오른쪽으로 도세요.'

오늘 귀인을 두 명이나 만났다. 왠지 시험을 볼 것 같다.


윤중중학교 교문 앞에는 사인펜을 파는 사람들, 2차 구술면접시험 대비반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주 오래전 토익 시험을 볼 때처럼 교문 앞 풍경이 낯익고 정다웠다.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5층 꼭대기 교실로 올라가는데 내 앞의 육중한 몸매의 남자가 숨을 헐떡거렸다. 왜 하필 5층이냐며 투덜거리는 거 같았다.


시험을 치를 교실로 들어서자 자리 배치도가 보였다. 가로 다섯 줄 중에서 내 자리는 한가운데 줄에서 뒤에서 세 번째였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한두 명씩 사람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이십 대부터 한 육십 대까지 보이는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다들 칠판에 붙은 자리 배치도를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고 앉았다. 그런데도 자기 자리를 잘 못 앉아 자리를 서로 바꾸는 일이 몇 차례 발생했다. 속으로 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저런 머리로 어떻게 시험을 보누, 으이그'


9시가 다 되어가자 시험 감독관이 교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씩 호명하면서 출석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내 이름을 호명한 뒤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다시 쳐다봤다. 'ㅇㅇㅇ 님, 그 자리 아닙니다. 앞으로 한 칸 오세요.' 나와 내 뒷사람들 모두 한 칸씩 당겼다. 사돈 남 말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시험은 네 과목인데 국사, 자원, 법규, 개론 총 100 문제다. 회사 다니면서 시험 준비하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올해 1월부터 부서를 옮겼는데 스케줄 근무를 시작했다. 평근 할 때보다 공부할 자투리 시간은 마련할 수 있었지만 스케줄 근무 특성상 늘 잠이 부족해 정신이 몽롱했다. 혹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이에 맞게 잘하는 것이 대체로 있는 것 같다. 특히 외우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쉽지 않다.


그동안 좋아하는 글쓰기를 미뤄두고 시험 준비를 했다. 쉬는 날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암기할 내용은 스마트 폰으로 찍어서 회사에서도 쉬는 시간에 틈틈이 들여다봤다. 외우고 까먹고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은퇴 후 내 모습을 떠올리며 행복한 생각이 들었다. 2차 시험은 영어 구술 면접시험이다. 1차를 다행히 잘 본 것 같으니 2차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 번 해보자.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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