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을 내려놓는 순간

전축

by 마음을 쓰다

누구나 자기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나 노래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노래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음악은 그저 흘러가는 소리가 아니라, 그 시대를 견뎌낸 개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은 역사였다. 집이 조금 부유한 친구들은 커다란 전축을 들여놓고 LP판을 수집하며 음악을 즐겼다. 그들에게 음악 감상은 하나의 의식이자 특권처럼 보였다.


하지만 형편이 넉넉지 못한 우리 집을 비롯한 대부분의 보통 가정에서는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기에, 좋아하는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 한두 개는 늘 손때가 묻어 있었다. 마음에 드는 노랫말 한 줄을 받아 적고 싶어 몇 번씩 반복 재생 버튼을 누르다 테이프의 음질이 늘어나 둔탁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테이프 구멍에 연필을 끼워 한 바퀴, 한 바퀴, 조심스레 되감곤 했는데, 그 손끝의 섬세한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얇은 플라스틱 안에 담긴 아날로그의 세계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생겼다. 이종사촌 형님이 쓰던 낡은 전축이 내 품에 들어온 것이다. 이모집에 놀러 갈 때마다 형님은 커다란 검은색 헤드셋을 끼고 음악에 몰입해 있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만의 우주를 여행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고독하고도 충만한 모습이 부러워서, 언젠가 나도 저 전축 앞에 앉아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던 기억이 있다. 이모부께서 원양어선을 타고 다니며 조금씩 모은 돈으로 큼직한 신형 전축을 사 오시자, 형님은 자연스레 오래된 전축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이모부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일본제 만화 시계, 잠자리 모양이 찍힌 짙은 초록색 연필,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연필깎이 같은 귀한 외제 물건을 잔뜩 들고 오셨다. 그 물건들은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지만, 무엇보다 낡은 그 전축이야말로 내 어린 마음에 가장 큰 선물이자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전축을 집에 들이던 날, 나는 온종일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턴테이블의 묵직한 질감을 만져보았다. 턴테이블이 돌아가며 뿜어내는 기계 특유의 냄새와, 전원이 들어올 때 ‘웅’ 하고 울리는 진동마저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전축을 갖게 된 뒤로 나는 용돈을 모아 하나둘씩 LP판을 사 모았다. 동네 레코드 가게에 들어서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 종이와 먼지, 음악이 뒤섞인 특유의 향기가 먼저 반겼다. 빽빽하게 꽂힌 LP 재킷을 한 장씩 꺼내 들여다보는 순간마다, 그 안의 세계가 내게 손짓하는 듯 설렜다. 음악을 고르는 행위는 신중한 독서와 같았다.


내가 처음으로 돈을 모아 산 팝송 LP는 **POCO의 ‘Sea of Heartbreak’**였다. 잔잔하게 시작하는 기타 선율은 철 모르던 내 감성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비 오는 날 창문을 타고 흐르던 빗물의 냄새와 함께 Smokie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해지면, 낡은 방 안에서도 어딘가 먼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다. 특히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를 들을 때면, 이웃집에 사는 앨리스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수십 년을 보낸 남자의 미련 가득한 뒷모습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노래들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이별과 그리움의 감정을 대신 알려주었다.


가요는 단연코 그룹 들국화가 차지했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는 내 방의 벽지처럼 흔하게 들렸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문장이 내 가슴속에 쓰였다. 거친 듯 진솔한 그들의 음악은 암울했던 시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이자, 외로움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LP판을 틀 때면, 바늘이 닳아 자주 끊어지곤 했다. 그러면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새 다이아몬드 바늘을 사야 했다. 그 수고로움조차 음악을 향한 하나의 의식처럼 즐거웠다. LP를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톤암(Tone Arm)을 들어 바늘을 홈 위에 내려놓는 그 순간의 긴장감. 그리고 '틱' 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 모든 번거로움을 보상하는 고요한 행복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로 넘어가면서, 부모님은 점점 내 음악 취향을 못마땅해하셨다. “공부는 안 하고 맨날 노래만 듣는다”라고 잔소리하셨지만, 나는 음악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음악은 도피처가 아니라, 고단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 전축이 잦은 잔고장으로 더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자, 나 역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결국 대학 입시라는 또 하나의 큰 산을 넘기 위해, 아날로그의 세계를 잠시 덮어두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자연스레 김광석의 노래로 마음이 향했다.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그의 목소리는 마치 내 삶의 배경음처럼 깔려 있었다. 격렬한 록 음악이 시대의 분노를 대변했다면, 김광석의 노래는 시대를 견뎌내는 개인의 **비감(悲感)**을 잔잔히 어루만졌다. 그중에서도 **‘부치지 않은 편지’**를 가장 좋아했다.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숨어 있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흔들었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아름다움과 어려움, 희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이 짧은 구절은 청춘이 겪는 모든 고뇌를 응축한 듯했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지금도 이 가사는 내 마음을 깊이 울린다.


얼마 전, 딸아이가 친구에게서 생일 선물로 턴테이블을 받았다며 밝게 웃었다. 새로운 세대가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가볍게 여길 법한 물건이, 다시 그들의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사춘기 시절 헤드셋을 끼고 전축 앞에 앉아 세상과 단절된 채 음악에 빠져 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대는 다르지만, 손끝으로 바늘을 내려놓고, 그 미세한 진동이 소리가 되는 순간에 마음이 흔들리는 감정만큼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딸아이가 자신만의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를 찾아가겠지만, 그전에 아빠가 사랑했던 노래들을 한 장씩 들려주고 싶다.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고, LP를 턴테이블 위에 올리는 그 아날로그적인 수고로움이야말로, 음악이 소중한 경험이 되는 첫걸음임을 딸에게 알려주고 싶다. 음악은 늘 그렇게, 지나간 세대와 다가오는 세대를 조용히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가 되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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