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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Nov 12. 2023

일상

청주공항

어제 새벽 출근길에 자동차 온도계가 영하 1도를 가리켰다. 청주에 와서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는 것을 처음 봤다. 한 여름 그렇게 더웠는데 가을은 잠시 스쳐가고 거짓말같이 겨울이 왔다. 올해 처음 청주에 왔을 때, 이제 막 벚꽃이 가냘픈 봉오리를 터뜨리려고 했었는데 벌써 사계절이 한 바퀴 돌았다. 무상하다.


겨울이 오면 항공사의 공항 직원들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항공기 스케줄이 하계에서 동계로 바뀜에  따라 공항의 관련 기관에 알려야 한다. 동계 시즌은 매년 시월 마지막 주 일요일부터 시작되고, 공항에는 공항공사, 법무부, 세관, 검역, 국토부 청주출장소, 국정원, 공항 경찰대 등 여러 기관이 있다. 아담한 시골 공항이라서 동네 이웃처럼 사이좋게 지낸다.


유니폼도 갈아입는다. 청주공항에는 국적사가 7개 있는데 동계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각 항공사 직원들의 다채로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 '어디 회사 유니폼이 제일 예쁘다', '저 회사 유니폼은 좀 촌스럽다' 등 수다도 뜬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내 눈에는 우리 색동날개의 짙은 갈색 유니폼이 제일 예뻐 보인다. 왠지 겨울 속의 귀여운 고라니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설 작업을 위한 관련 기관과 협의도 해야 한다. 청주공항은 군 공항으로 제17전투비행단 ( 17 비 )이 주둔하고 있다. 제설 작업은 17 비 소관이다. 작년에 제설 작업이 원활하지 못해 민간 항공기들의 지연 사태가 발생했다고 들었다. 군 공항 특성상 주도권은 늘 공군에 있다. 올 겨울 잘 좀 부탁한다고 예의 바르게 요청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직원들과 모처럼 외부에서 아점을 먹었다. 동계 스케줄로 바뀐 뒤 둘째 편 카운터 오픈을 12시경에 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무실에서 비상 대기를 하는 운항 담당 직원의 긴급 전화를 받았다. 광주공항에서 항공기 정비 상황이 발생했다. 이렇게 되면 이 항공기로 운항하는 오늘 연결 편은 전부 지연이 된다. 체할 것 같다.


사무실에 도착해 상세한 보고를 받았는데 4시간 정도 지연이 될 것 같다. 토요일이라서 다른 항공사들도 좌석 여유가 많이 없을 텐데 상황이 심각하다. 직원들을 집합시키고 긴급 브리핑을 열어 후속 조치를 지시했다. 최대한 타 항공사들에게 협조를 요청해 유사한 시간대의 좌석을 확보해야 한다. 긴급하게 가시는 고객을 위한 조치다. 그리고 비행 출발시간이 지연되더라도 우리 비행기를 타시는 고객께는 회사 규정에 따라 보상을 해야 한다. 긴장한 직원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직원들이 더 초조해하니까.


카운터에 내려가보니 고객들의 클레임이 시작되었다.


'지점장! 나오라고 그래!', '항공기 정비는 너네들 사정이고, 빨리 조치를 취하란 말이야!'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성난 고객들에게 죄인처럼 다가갔다.


'손님, 제가 지점장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사 규정에 따라 보상안을 마련하겠으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그래서 뭐! 당신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뭐요!, 보상안이 뭐냐고요!, '다시는 이 항공사 타나 봐라'.


카운터 앞은 여기저기 직원들을 둘러싼 고객들의 크고 작은 원들이 흩어져 있다. 마치 제주도 오름처럼.

한참을 이렇게 고객들의 공격과 직원들의 방어 시간이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양쪽이 모두 지친다. 화를 내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 소비라서 그런지 기운이 빠진 고객들은 출발장으로 하나둘씩 들어가신다.


고통의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고 마침내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탑승구 앞에서 줄을 선 고객들에게 보상 방안으로 상품권을 드렸다. 이때 고객들과 직원들의 눈빛 교환이 미묘하다. 미안한 표정의 직원들과 안쓰럽게 쳐다보는 고객들의 표정. 간혹 수고했다고 어깨를 다독이는 고객도 있다. 그럴 때는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객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했다. 창공 속으로 사라지는 비행기를 쳐다보며 나와 우리 직원들은 이제 숨 죽은 파김치가 되었다.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했거늘, 말처럼 쉽지가 않다.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힘겨운 미소를 짓는다.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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