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lendor in the Grass
잔디가 자라는 소리
우리말로 '초원의 빛'으로 번역된 이 노래의 가사에 이런 말이 나온다.
Rest our heads upon the grass and listen to it grow,
잔디에 우리의 머리를 쉬게 하고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잔디가 자라는 소리
오래전 박웅현 작가가 쓴 '책은 도끼다'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선 살벌한 도끼라는 표현에 좀 의아했고, 소개된 다채로운 문학, 그림, 음악 등이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나오는 책을 또 사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냥 무심코 스쳐갔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노래를 들을땐 가사를 음미하며 듣고, 책을 읽을 때는 문장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되새기며 읽고, 사물을 볼 때는 들여다보려고 한다. 길을 걸을 땐 될 수 있는 한 내 무게를 느끼며 천천히 걷고, 말을 할 때도 내 목소리를 들으며 최대한 천천히 말한다. 모든 것을 천천히 보고 듣고 느낀다.
초원의 빛은 인프피 성향인 나에게 잘 스며드는 노래다. 처음엔 가사 내용을 잘 모르고 들었는데도 감성을 자극하는 피아노 반주가 좋았고, 나중에 가사를 찾아보고 난 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차가운 새벽 출근길에 갓 내린 캡슐 커피를 마시며 볼륨을 살짝 올려 들었는데 참 좋았다. 좋은 노래는 세월과 함께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십 대 후반에 취직해서 참 치열하게 살아왔다. 고향을 떠나 경쟁이 치열한 서울 본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해외에서 지점 개설하고 경쟁사 따라잡느라 젖 먹던 힘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청주.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 오창호수공원에는 이 노래처럼 머리를 쉬게 할 수 있는 푸른 잔디 언덕이 비스듬히 누워있고, 아래에는 동화책에 나올법한 그림 같은 호수가 앉아 있다. 호수를 둘러싼 다양한 나무 산책길과 호수의 유명인사, 오리 세 마리가 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잔디에 앉아 호수 위 분수에서 무지개 빛깔의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 차가운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나만의 눈이 생겨서 참 좋다. 그런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이 세상의 모든 작가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쁘다는 의미를 살아가면서 조금씩 깨닫는다.
사진 by 인프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