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먼 숲속에는 수많은 새들이 살고 있었다.
겨울이 오면 바람은 매서웠고, 먹이는 부족했다.
어느 날 새들은 더 이상 흩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모두 힘을 모아 하나의 큰 깃발 둥지를 세웠다.
그 깃발 아래에서는 크든 작든, 빠르든 느리든, 모든 새가 평등했다.
그들이 처음 세운 약속은 단 하나였다.
“우리의 깃발은 서로의 날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날 이후 숲은 달라졌다.
새들은 함께 날아가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겨울을 견뎠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깃발 아래서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깃발을 지켜야 한다며 붉은 바람새 무리와 푸른 불꽃새 무리가 나뉘었다.
둘 다 처음엔 깃발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관심은 점점 깃발을 누가 쥐느냐에 쏠려 있었다.
붉은 바람새들은 말했다.
“깃발은 우리가 세웠다. 그러니 깃발지기는 우리 무리에서 나와야 해.”
푸른 불꽃새들이 맞섰다.
“깃발은 숲의 것이지, 어느 한 무리의 것도 아니다.
너희의 깃발지기는 깃발을 휘두르려 하지 않았느냐.”
그때부터 두 무리는 서로의 노래를 지우기 시작했다.
붉은 바람새는 푸른 새의 노래를 “잘못된 노래”라 했고,
푸른 불꽃새는 붉은 새의 노래를 “오래된 노래”라 했다.
그러는 사이, 숲의 바깥에서는 인간들이 벌목을 시작했다.
나무가 쓰러지고, 둥지가 무너졌지만
붉은 새도, 푸른 새도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다음 깃발지기 자리를 차지할 새를 뽑는 일에 몰두했다.
“이번엔 반드시 우리 무리의 깃발지기가 되어야 해!”
“깃발이 푸른 빛으로 빛나야 진짜 숲이 되는 거야!”
그들이 싸우는 동안, 깃발은 바람에 찢기고 색이 바랬다.
숲의 작은 새들이 조용히 물었다.
“깃발지기가 누가 되든 무슨 소용인가요?
숲이 무너지고 있는데, 깃발을 들 곳조차 사라졌어요.”
그러나 큰 새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깃발의 색깔을 지키느라 서로의 날개를 찢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늙은 올빼미가 말했다.
“깃발은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품는 것이다.
깃발지기는 높은 곳에서 휘두르는 새가 아니라,
가장 낮은 가지에서 다른 새들을 감싸주는 새여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몇 해가 흐르고, 숲에는 노래가 사라졌다.
깃발의 자리를 두고 다투던 붉은 새도, 푸른 새도 사라졌다.
깃발은 찢어진 채, 강물에 떠내려갔다.
그제야 남은 새들이 울부짖었다.
“우린 깃발을 세우기 위해 날개를 모았는데,
결국 깃발 하나에 서로의 날개를 잃어버렸구나.”
그날 밤, 달빛 아래에서 올빼미는 낡은 천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깃발을 만들었다.
이번엔 붉지도, 푸르지도 않았다.
그 깃발에는 단 한 줄의 문장만이 새겨져 있었다.
“깃발은 색으로 나뉘지 않는다.
깃발은 서로의 날개로 완성된다.”
그제야 새들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누가 깃발지기가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깃발지기는 높이 서 있는 새가 아니라,
노래가 멈춘 곳에서 다시 불씨를 살려주는 새였다.
깃발을 들고 앞서 가는 이가 ‘깃발지기’라면,
그의 손보다 중요한 것은 그를 따라 걷는 새들의 마음이다.
깃발의 색으로 다투는 순간, 숲은 갈라진다.
진정한 깃발은 권력이 아니라 연대의 그림자 위에 세워진다.
누가 깃발을 들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깃발 아래에 서로의 날개가 닿아 있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