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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호 Oct 13. 2024

KJ 형님

KJ 형님


백패커에 처음 들어가면서 매니저로 일하던 KJ 형님을 만났다. 형님은 정말 쿨하고 멋진 분이었다.
그때 나는 첫 번째 오지잡에서 잘리고, 두 번째 오지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값을 낼 돈이 없던 상태였다.

며칠만 기다리면 주급이 들어올 텐데, 그때서야 방값을 낼 수 있었지만 이런 사정을 처음 만난 KJ 형님께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말씀드렸더니, 형님께서는 흔쾌히 나에게 방을 내어주셨다. 내 여권을 담보로 잡은 것이긴 했지만, 그 상황에서는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

사실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리거나, 집에 연락해서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호주로 올 때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쨌든 여권을 맡기고 방을 얻게 되었다. KJ 형님 덕분에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었다. 형님께 더 감사했고, 자연스레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KJ 형님도 나처럼 워홀러로 호주에 와 있었다.
당시 형님은 백패커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지만, 돈을 번다기보다 방값이 무료였기 때문에 그 일을 한다고 했다. 형님도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고 있었지만, 그게 쉽지 않다고 하셨다.
그런 형님에게 나는 신기한 존재였다.
호주에 온 지 한 달 만에 오지잡을 시작했고, 그때도 시급 20불짜리 일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형님은 나를 부러워했다. 더욱이 내가 보잘것없는 영어 실력으로 오지잡을 구했다는 사실이 형님을 더 놀라게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뿌듯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KJ 형님은 정말 영어를 잘하셨다. 외국인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대화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나는 늘 그 자리에서 듣기만 하며 영어를 배웠다.


내가 시드니를 떠나는 날, 내가 하고 있던 시급 20불짜리 오지잡을 형님께 넘겨드렸다. 형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내가 형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다.
형님은 힘든 일이었음에도 그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셨고, 이후 5개월간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좀 모으셨다고 했다.
형님은 나에게 늘 감사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더 감사했다. 내가 돈이 없어 방값을 못 낼 때 여권만 받고 방을 내어주신 것도 그렇고,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맛있는 것과 좋은 음식을 사주며 챙겨주셨으니까.


어느 날 형님은 자신의 은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힘들었던 시절, 은인 같은 분이 나타나 그 시절을 함께해 주었고, 그분은 감동만 남긴 채 사라졌다고 했다. 그리고 KJ 형님도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셨다. 형님은 나에게 은인이다.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외국인 친구들과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 그리고 누군가 영어로 나를 무시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까지 많은 것을 보여주셨다.


한동안 KJ 형님께 받은 은혜를 갚고자 연락처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형님의 은인이 그랬던 것처럼 형님도 나를 도와주고는 말없이 사라지셨다.


혹시 형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호주에서 정말 감사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생긴다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도와주고 싶다. 연락처도 없이 사라져주겠다, KJ 형님처럼.


*나눔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다 –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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