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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호 Nov 09. 2024

쉐프의 칼

쉐프의 칼


키친에서 일하는 건 항상 즐거웠다.
더 이상 설거지만 하는 키친핸드가 아닌, 나름 칼질도 하고 요리도 준비하는 키친핸드가 되어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키친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쉐프의 칼을 절대 만지지 않는 것이다.


그날도 바쁘게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음식을 준비하면서 나는 레미의 작은 칼(다이소에서 천 원에 파는 작은 칼이었다)을 사용했다. 그런데 몇 분 뒤, 레미가 갑자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누가 내 칼 사용했어?”
“… 내가 아까 잠깐 썼던 것 같은데... 왜?”
“이런 @$!@#%&!”
레미는 욕을 하며 화를 냈다. 그 칼이 태국에서 직접 사온 특별한 칼이라며 나보고 돈을 물어내라고 했다. 아주 비싼 칼은 아니었지만, 태국까지 가는 비행기 값과 칼 값을 다 물어내라는 말에 나도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나도 화가 나서,
“얼마면 돼? 그냥 물어주면 될 거 아냐!”
라는 식으로 말했고,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쉐프에게 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요리사들 대부분이 자기 칼을 누군가 사용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는 절대 쉐프의 칼은 손대지 않았다.


그날 또 한국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해서 기분이 우울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 한 명을 사고로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칼 때문에 레미와 다툰 일까지 겹쳐 마음이 더 침울해졌다.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생기는 법인가 보다. 일 끝나고 한국에 있는 친구를 생각하며, 별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도 보고 싶고, 친구도 그립고, 어머니가 해주신 밥도 그리웠다.
힘들 때는 역시 고향이 가장 생각나는 것 같다.
호주에서 처음으로 가장 힘든 하루였다.


그날 밤, 레미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서로 한잔하며 화해했다. 레미도 오래전 친구를 잃었다고 한다.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곳에서 내가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날 결심했다.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자고,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겠노라고.


"요리사의 칼은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 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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