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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호 2시간전

울지마, 루시

울지마, 루시


루시는 리셉션에서 일하는 프랑스 친구다.
이 호텔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워홀러였고, 호주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루시는 내가 호주에서 처음 만난 프랑스 여자였다.
프랑스인답게 빵과 와인을 좋아했고, 항상 책을 읽으며 똑똑함을 보여주는 친구였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가끔은 자기 배가 살짝 나온 걸 자랑하며 장난치기도 하고, 매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텔에 활기를 불어넣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루시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다니엘, 너 태권도 할 줄 알아?”
“당연하지! 나 한국 사람이잖아. 그리고 나 태권도 3단이라구!”
어릴 때 태권도를 열심히 해서 3품을 딴 뒤로는 10년 넘게 하지 않았지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 태권도 잘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루시는 내게 부탁했다.
“내일 내 남자친구가 찾아올 건데... 나 좀 지켜줄 수 있어?”
“걱정 마! 나만 믿어. 그까짓 거!”
나는 겉으로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혹시 싸움이라도 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며칠 전 루시는 결혼하기로 약혼한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늘 밝게 웃고 다니던 루시가 어느 날 우울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그때 알았다. 호텔 스태프들은 루시를 위로하며 함께 걱정해주었고, 그녀는 다시 밝게 웃기 시작했지만, 그날 밤 남자친구가 호텔로 찾아온다고 하니 불안해하는 듯했다. 물론 나도 긴장됐다. 태권도를 배운 적은 있지만, 실제로 싸워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루시의 남자친구는 나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호주 남자였다.


그리고 다음 날,
루시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다가와 말했다.
“다니엘, 그가 왔어. 부탁해...”
나는 루시와 남자친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변을 서성거렸다.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10분쯤 지나 두 사람의 진지한 대화가 끝나고, 다행히 루시의 남자친구는 별일 없이 떠났다.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루시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말했다.
“고마워, 다니엘. 네가 큰 힘이 됐어.”
“아~ 뭐 이런 걸 다...”
나는 겸손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루시를 만났을 때, 호주인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호주에서 인생을 설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꿈은 무너졌고, 결국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호주에서 처음 만난 프랑스 친구, 루시. 그녀는 그 슬픔을 잘 이겨내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가끔 그녀의 웃음소리가 그립다.
"케케케케"
아무튼 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국적을 불문하고 나쁜 놈이다. 그런 놈들에게 태권도 540도 돌려차기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없었다. 하하하.

"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다." –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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