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찾아 헤매던 어제
노플릴스 꽃은 사고 싶지 않았다
꽃 집에서는 비싸다는 선입견으로 엄두를 못 냈다
그나마 나을 것 같아 코스코에서 사야겠다고 맘먹고
퇴근 후 우리 네 식구는 코스코를 향했다
가는 길에 마이클스도 들려서 꽃포장 종이도 샀다
코스코를 도착!
엉거주춤 문을 열고 내리려는데
코스코 카드를 안 갖고 왔다는 남편 말에
앗불싸! 황당했다
순간 화도 났다.
코스코를 왜 왔는지 포인트를 잊어버린 남편님!
집에 갔다 올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실컷 꽃사서 예쁘게 꽃포장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었는데 망쳤다
시큰둥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깊은 곳에서 심통이 일면서 맘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침에는 꽃을 사서 포장할 여유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던 길에 슈퍼스토어에도 들려 보았다
꽃이 맘에 들지 않는다
걀러리아에도 들렸다
장미밖에 없다
에효! 어쩔 수 없이 낼 아침에 사야지~~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꽃을 준비 못해서 맘이 불편하다
냉동고를 열어 속의 열을 내릴 방도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물어본다
달콤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일어나라고 보챈다
남편은 일찍부터 나가면서 8시 20분까지 파킹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부지런히 준비해서 큰아이의 졸업식장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코스코를 향했다.
젤 맘에 드는 꽃은 꽃병에 꽂혀있다. 그런데 그것을 사서 집에서 꽃포장할 시간은 역 부족이다.
우선 꽃포장 하고 싶은 마음은 내려놓고
꽃다발만 사서 아들 졸업식에 가기로 결심했다
모둠꽃다발은 수국과 거버라로 포인트를 준 것을 선택했다
코스코도 여러 종류가 없다
중간중간 장미로 포인트를 더 주면 좋겠는데
내 의견 반영은 뒤로 미루고 꽃다발을 하나 골라서 결재했다
다시 집에 와서 준비해 둔 원피스로 갈아입고
둘째를 데리고 겨우 시간 맞추어 졸업식장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부터 여기 번쩍 저 기번 쩍 번갯불이 따로 없다
졸업식장 근처 파킹장에 도착했을 때
난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름 아닌 원피스 안에 꼭 챙겨 입어야 할 속치마를 입지 않았다
헐@@ 원피스를 내려다보았다.
원피스가 비춰서 두 다리가 살짝 비췬다.
난감한 상황이지만 난 좀 더 용기를 내어 용감할 필요성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양 태연하게 오늘 잘 보내야 했다. 그리고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속치마를 안 입고 비친 스커트를 입은 모습들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괜찮아"
남의 눈치 보지 않는 캐나다! 눈 한번 찔끔 감았다.
수많은 사람들(졸업생 600여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족히 2500명은 되지 싶었다
뒷좌석에 앉아서 큰아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81번이면 저 정도는 되겠지.'
앞자리부터 세어보면서 80번대는 어느 자리일지 가늠해 보고
전화기를 들고 사진을 확대해 가면서 아들의 얼굴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던 중, 아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강단에 나타난 아들!
순간 나는 남들처럼 고함을 쳤다."우우~~" 엄마는 용감했다
내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남편과 둘째!@@
함께 소리쳐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다.
나는 큰아이가 자랑스럽다
졸업식에 한국사람의 이름은 5명 정도 불러졌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5명 정도라니 나는 조금 놀라웠다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둔 큰아이를 축복한다
중간에 쉬고 싶다고 했는데 학교 휴학을 말리며 졸업식까지
밀어붙였다. 엄마말 잘 따라준 아들에게 고맙다.
"남들 다 쉬면서 하는데 나도 쉬고 싶어"아들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래도 늘 엄마말에 귀 기울이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9월 새 학기엔 미국에서 대학원을 시작한다
미국 가기 전까지 대학교 다니면서 하던 일을 한단다.
큰아이는 4년 동안 써머잡으로 체스를 가르쳤는데
올해도 연락이 왔단다
7월부터 9월 입학 전까지 학교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체스를 가르친다
나는 4년 동안 한 번도 아들에게 용돈을 준 적이 없다.
체스 강사도 혼자서 해냈다.
학교 다니면서 체스 협회에서 지정해 준 학교에 가서 티칭을 하고 용돈을 모아 생활했다.
우리 가정은 다른 집보다 풍요롭지 않았고, 아들의 필요를 풍족히 채워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들은 한 번도 불평이나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아들이 앞으로도 잘하리라고 믿는다. 스스로 노력해서 잘 자라주고 멋지게 성장해 준 아들에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대학원 생활도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아들로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아들을 축복한다.
"David 사랑해."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