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on Yu MD Nov 23. 2020

공중보건의사 일기 #1

노인 환자에게서 약을 뺀다는 것

보건지소는 주로 시골 마을에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방문하신다. 많은 어르신들이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만성 질환으로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게 된다. 언제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약이 늘어나기만 할 뿐 줄어들지는 않는다. 심지어 약을 많이 먹는 게 익숙한 분들은 복용해야 할 알약 개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약을 먹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까 봐 줄어드는 걸 경계하기도 한다.


78세 김 할머니(가명)는 오랫동안 복용해온 고혈압약을 받기 위해 보건지소에 내원하셨다. 김 할머니가 복용하시던 약은 혈압약과 아스피린. 이전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질환은 앓은 적은 없다. 문득 최근에 공부했던 내용이 생각나며 이 할머니는 아스피린을 복용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ACC/AHA(미국 심장학회) 가이드라인을 급하게 검색해보았다. 대개는 우리나라 심장학회도 미국의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 (보험 관련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2019 AHA/ACC Guideline on the Primary Prevention of Cardiovascular Disease

가이드라인에는 과거에 심혈관질환을 앓았기 때문에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이차 예방)를 제외하고, 과거에 질환이 없었지만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복용할 때(일차 예방) 70세가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스피린 복용을 하면 안 된다. 아스피린이 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출혈 등과 같은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일차 예방에 있어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어오고 있다. 어쨌든 가장 최신 지견이 이렇다면 이에 맞게 따르는 게 내 몫이다. 그래서 김 할머니께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클 수 있다고 설명드리고 아스피린을 끊는 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려 보았고 할머니는 좋다고 동의하셔서 중단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아스피린을 끊게 해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시골에 있는 보건지소는 거의 100% 공중보건의사가 진료를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매해 전역하는 선생님들도 계시고 자리도 바뀌고 하기 때문에 새로운 자리로 이동하면 이전에 계셨던 선생님들의 루틴을 따라가게 된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약을 오랫동안 드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대로 이어서 복용하는 게 문제는 없다. 게다가 앞에서 말했듯이 다른 문제가 생기면 약을 추가할 생각만 했지, 약을 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처럼 굳이 복용하지 않아도 될 약을 남겨둘 필요는 없다. 조금 더 세심하게 보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아직 경험과 배움이 많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