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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Yu MD Nov 30. 2020

의대생이 경험한 해외 의료 이야기 #1  

케냐 이야기①

'의대생이 경험한 해외 의료 이야기'는 블록체인 기반 SNS인 스팀잇(https://steemit.com/@jisang)에 업로드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올립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시절 해외 의료 경험기입니다. 처음은 제가 경험했던 케냐의 의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가본 나라가 많진 않지만 해외여행 한 번쯤은 가보실 거고 다른 나라에 관심은 가져보실 테니 외국 어딘가는 이런 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구나 정도만 간접 경험하실 수 있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큰 보람이 될 것 같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선교센터에서는 매해 의대생 네 명을 케냐로 실습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소 개발도상국의 의료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지금이 아니면 아프리카에 언제 가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방학기간임을 확인하고는 얼른 지원을 하게 되었죠. 지원자가 많지 않았기에 자기소개서와 짧은 영어면접을 보고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1월, 의대생의 마지막 학년인 본과 4학년에 들어가기 전에 저는 케냐로 의료 실습을 가게 되었습니다.

케냐는 인구 약 4,435만 명(2013년 기준)의 나라로 우리나라와 인구는 비슷한 정도입니다. 기대수명이 남성 57세, 여성 59세 정도이고, 인구만 명당 의사 수는 1.3명으로 한국의 1/20 정도라고 하네요. 

케냐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도심은 화려하지만, 그 바깥에는 끝이 없는 사바나가 펼쳐집니다


제가 갔었던 곳은 케냐의 수도이자 중심, 나이로비에서 차를 타고 6시간 정도 이동해야 있는 곳이었습니다. 도착했던 텐웩 병원은 시설이 준수한 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오신 의료선교사 들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확장된 텐웩 병원은 300 병상 정도의 크기(2017년 기준)로, 그 지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병원입니다.   


텐웩 병원에서 경험한 상황은 한국에서 경험한 그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CT/X-ray도 이렇게 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광경을 보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입원 환자의 2-30% 정도는 면역이 약화된 환자였습니다. 이 곳에서 면역이 약화된 환자라는 뜻은 대부분 AIDS(에이즈,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임을 의미합니다.(에이즈 검사를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에이즈 환자에게 나타나는 면역세포 수를 대신 측정해 검사를 하곤 했습니다.) 에이즈는 이미 감염된 사람과의 성관계나 감염된 사람의 혈액을 수혈받을 때 전파될 수 있기도 하지만, 수직감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수직감염은 임신 중 혹은 출산 시에 모체로부터 감염이 전달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병원에는 수직감염으로 어린 나이부터 에이즈를 앓게 된 소아 환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신나게 뛰어놀 아이들이 부모로 받은 바이러스 때문에 에이즈 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한 것이죠. 참 안타까웠습니다. 에이즈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면역세포들이 바이러스에 의해 공격을 받아 사멸하면서 온갖 감염병과 암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어 규칙적으로 복용하기만 하면 바이러스의 활성을 최소화시키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소아과 실습을 돌던 중, 입원해있던 13살 아이가 류마티스 심장병으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상황까지 이르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여러 의료진이 달라붙어 산소치료와 약물 등을 주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심장을 멈추었고 우리는 번갈아가면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수업도 듣고 모형에 심폐소생술을 연습도 해보았지만 사람에게 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심폐소생술을 할 상황이 되니 몸이 자동으로 움직여지더군요. 배운 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 아이의 심장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류마티스 심장병을 오랫동안 앓아왔기 때문에 어떤 치료로도 심장이 회복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더 이상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아이의 상태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첫 심폐소생술의 결과가 죽음으로 끝난 것에 대해 한 동안 '내가 더 잘할 수 있진 않았을까'하는 후회와 '항생제 치료만 제때 받으면 이런 합병증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 그리고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숙명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소아과 실습을 도는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소아과 병동에 있던 아이 둘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심폐소생술을 했던 아이의 빈자리입니다.    급박했던 순간이 지나고 나니 감정이 울컥 올라오더군요.    이 순간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에 담아두었습니다.


케냐에 있던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모르는 게 많았던 학생 나부랭이였을 뿐이었습니다. 배움도 부족하고 할 수 있는 술기가 많지 않아 옆에서 보조하며 발만 동동 구르곤 했었죠.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나면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냐뿐만 아니라 수많은 곳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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