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 시즌
보건지소는 10~11월에 가장 바쁘다. 바로 독감 예방접종 시즌이다. 예전에는 보건소에서만 독감 접종을 했기 때문에 훨씬 더 바빴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지역 의원에도 정부 예산 지원이 나오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같이해서 좀 줄었다. 다행히도 내가 있는 곳은 아주 시골은 아니라서 주변에 의원이 있다. 보통 읍면 단위에서 예방접종이 시작하기 전에 홍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르신들은 부지런하게 예방접종 시작하는 당일, 보건지소가 문을 여는 9시가 되기 무섭게 줄 서서 진을 치고 계신다.
올해는 독감 백신 상온 노출부터 코로나에 대한 걱정 등 많은 이슈로 접종 일정이 변경되는 일도 있었지만 어김없이 어르신들은 제 날짜에 찾아오셨다. 평소와는 다르게 대기실이 분주한 모습을 보면 약간 어색한 기분마저 든다. 접종하러 왔다가 보건지소에서 오랜만에 마주치시는 분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독감과는 다르게 폐렴균 예방접종도 보건지소에서 한다. 우리나라에서 폐렴균 예방 접종은 65세 이상이면 23가 백신을 무료로 놓아준다. 대신 이 주사는 65세 이상에서 딱 한 번만 맞으면 끝이다. 매번 변종이 나오는 인플루엔자 독감 바이러스처럼 매해 맞을 필요가 없다.
정신없는 독감접종 시즌이 끝나면 가끔 할머니들이 무리 지어 자기는 안 맞은 것 같다면서 폐렴 예방접종을 맞으러 오시곤 한다. 경로당 같은 곳에서 좀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을 듣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미 접종을 마쳤을 거다. 보건지소에 계신 주사님(보건의료직 공무원으로 대개는 꽤 오랫동안 근무하신 분들이 많다. 공중보건의사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사무적인 일처리도 수월하다. 주사님이라고 통칭)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검색하시고는 할머니들께 외친다. "할머니들 이미 맞았네예!" 누구는 2016년에, 누구는 2017년에 이미 다 맞았다. 그러면 할머니들은 서로서로 맞았네 맞았네 하시면서 왁자지껄하게 나가신다. 느린 발걸음에 지팡이 짚으며 가시는 할머니들의 헛걸음은 역설적이게도 쾌활하다.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당장 1년 전에 무슨 주사 맞았는지 기억 안 나는데 할머니들은 오죽하실까. 그저 그 자리에서 늘 건강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