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비의 선물
7. 나비의 선물
희나는 고양이 신에게 지상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고양이 신은 희나를 위해 신전을 나와 여기 왔을 때와 꼭 같은 무지개다리를 띄워주었다.
반짝 반짝 빛나는 무지개 다리가 밤하늘 저 먼 곳까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래,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이었다. 고양이 신이 희나를 재촉했다.
-희나. 네 세상에 아침이 오려고 하고 있단다. 어서 무지개다리에 올라타렴.
그 재촉에 희나는 얼떨결에 무지개다리 위에 올라탔다.
희나가 무지개다리 위에 올라탄 그 순간, 땅에 닿아있던 무지개다리가 갑자기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나비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웠다.
“나비야!”
-희나야!
희나는 무지개다리에 주저앉아 바닥을 바라봤다. 땅 위에 있는 나비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무지개다리도 점점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비와 희나는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갑자기 헤어질 줄은 몰랐다. 나비는 점점 멀어지는 무지개다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희나야!
무지개다리를 따라 뛰던 나비는 울타리 위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렇게 무지개의 끝을 잡을 수 있었다.
희나는 얼른 나비의 손을 잡았다. 희나는 나비를 무지개다리 위로 끌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힘이 부족해서 그럴 수 없었다.
“나비야. 위험해! 얼른 손을 놔!”
무지개다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무지개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나비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나비가 아직 착지할 수 있을 때 빨리 무지개다리에서 손을 떼야 했다.
하지만 나비는 그러지 않았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무지개 다리에 매달린 채 희나에게 말했다.
-희나야. 난 너를 너무나 사랑했어. 나에겐 마치 네가 내 아기고양이처럼 느껴졌어.
무지개다리에 매달린 나비의 목소리는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비는 멈추지 않았다. 힘들어서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계속 희나에게 말했다.
-언제까지나 너의 머리칼을 핥아주고, 너에게 푸짐한 살코기를 물어다주고 싶었어. 희나야. 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네게 선물하고 싶었어.
희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나비의 손을 꼭 끌어안았다. 희나도 나비를 사랑했다.
그래서 이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헤어져야하는 걸 알면서도, 나비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 아름답고 행복했던 날들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했어. 하지만 그럴 순 없었지. 시간이 되면, 모든 엄마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들을 떠나보내야 해. 하지만 그건 슬픈 일이 아니야.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지.
희나의 노력에도 나비의 손은 점점 무지개다리에서 미끄러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마지막 순간, 나비는 있는 힘껏 고개를 들어 희나의 볼에 자기 볼을 비볐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속삭였다.
-그건 꼭 와야만 할 시간이야. 엄마도, 아기도, 슬퍼해야만 할 시간은 아닌 거야.
“나비야!”
마침내 나비의 손이 무지개다리에서 떨어졌다.
나비가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희나는 나비를 붙잡으려고 무지개다리 아래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희나가 비명을 지른 그 순간, 갑자기 검고 커다란 무언가가 무지개다리 쪽으로 날아왔다.
그건 고양이 신의 앞발이었다. 고양이신은 앞발로 떨어지는 나비를 받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고양이 신의 손 안에서 나비는 물기어린 파란 눈으로 희나를 보고 있었다. 희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지개다리는 이제 바람보다도 더 빠르게 밤하늘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나비와 희나는 서로 멀어지고, 멀어졌다.
넓고 넓은 초원에 두 마리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그건 고양이 신과 나비였다.
두 마리 고양이는 밤하늘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 이젠 새벽이 오고 있었다. 흐릿한 빛이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다.
나비는 그 빛을 바라보다가 고양이 신에게 말했다.
-고양이 신님, 소원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고양이 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비는 고양이 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바라봐도 신은 대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비는 다시 떠오르는 새벽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흐릿하고 아름다운 새벽빛을 바라보았다.
-고양이 신님. 저 빛이 참 아름다워요.
나비는 새벽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양이 신님. 부탁이에요. 희나의 부모님을 바꿔주세요. 희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희나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좋은 사람들로 바꿔주세요. 혼자 우는 희나가 너무 불쌍해요.
그리고 드디어, 고양이 신이 천천히 나비를 바라보았다.
나비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 새벽빛을 보고 있었다.
고양이 신이 나지막하게 나비에게 말했다.
-나비야. 그럴 수는 없단다.
하지만 나비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게 안 되면 희나가 매일 행복하게 해주세요. 누구나 그 애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희나의 삶 동안, 절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나비야. 그런 건 안 되는 일인걸 알잖니.
-왜 안 되나요? 신님은 신이잖아요. 제 모든 걸 드릴게요. 제 발톱도, 수염도, 쫑긋한 귀도, 원하신다면 다 드릴 수 있어요. 제발 희나에게 좋은 것 하나만 주세요. 전 희나에게 좋은 거라곤 아무것도 주지 못했단 말이에요.
나비의 동그란 볼로 가느다란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나비는 지금껏 희나에게 주었던 걸 떠올렸다.
무수한 벌레들, 머리끈, 병뚜껑, 고양이 장난감, 그리고 생일 날의 나비…….
모두 그때의 나비에겐 최선이었지만, 사실 나비는 알고 있었다.
그것들 모두 희나에겐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일 거라는 걸. 하지만 그런 것밖에 줄 수 없었다.
그것말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희나에게 좋은 걸 주고 싶었다.
-나비야.
고양이 신이 다시 한 번 나비를 불렀다.
-나비야. 넌 정말 희나에게 준 게 아무것도 없니?
나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신은 그런 나비를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비는 그 미소를 원망스레 바라봤다.
왜 모든 걸 바친대도, 신은 아무것도 희나에게 주지 않을까? 왜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
고양이 신은 나비의 원망마저 이해한다는 듯, 나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나비야. 다시 생각해보렴. 너는 이미 희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큰 선물을 줬어.
나비의 눈물 젖은 두 눈은 영문을 모른 채 끔벅대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일까?
혹시 신이 다른 고양이와 나비를 헷갈린 게 아닐까?
나비는 지금껏 희나에게 보잘 것 없는 부스러기밖에 주지 못했는데. 아무것도 주지 못했는데.
-넌 지금껏 그 애를 최선을 다해 사랑했잖니.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 오직 너만 줄 수 있는 사랑. 그게 바로 가장 큰 선물이란다.
신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초원을 가득 채웠다.
아, 고양의 신의 말은 정말이지 뻔한 말이었다.
뻔하고 뻔해서,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결국 나비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작은 얼굴을 찌푸렸다.
나비의 얼굴은 점점 뜨거워지고, 마음은 한없이 슬퍼졌다.
아, 사랑. 결국은 사랑!
위대하다고들 말하지만, 가장 가치 있다고 말들 하지만, 지금의 나비에겐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사랑하는데도, 결국 사랑밖에 줄 수 없다니.
정녕 사랑밖에 줄 수 없는 걸 알았더라면, 더 사랑할 걸, 더 많이 사랑하고, 있는 힘껏 사랑하고, 후회 없이 사랑할 걸.
미안하고 후회스럽고 아쉬워서, 나비는 결국 어린 고양이처럼 엉엉 울었다.
저 멀리 떠오르는 아침 햇살 속에서, 나비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아침 햇살이 희나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햇살이 희나의 눈꺼풀을 콕콕콕 찔렀다. 그 바람에 희나는 잠에서 깼다.
희나가 잠에서 완전히 깨는 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희나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두 눈을 깜빡였다.
희나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햇살이 방 안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내가 아직도 고양이 나라에 있는 걸까?
하지만 주변엔 고양이 신도, 신전도, 자신과 같은 크기의 나비도 없었다.
희나는 어느새 익숙한 방 안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모든 게 꿈이었을까? 희나는 갸우뚱하며 옆자리를 살펴보았다.
나비는 늘 그랬듯 침대 위에 희나와 함께 누워있었다.
“나비야!”
희나가 나비를 반갑게 불렀다. 하지만 나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희나는 곧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다.
나비가 몸을 쭉 펴고 누워있었다. 아주 가만히 누워있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가슴에 귀를 대면 들리던 작은 심장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희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나비는 그냥 잠든 것 같았다.
조금 창백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비의 코는 여전히 예쁜 분홍색이었고, 수염도 멋쟁이 새우수염처럼 쭉 뻗어있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정말 그저 잠든 것 같았다.
희나는 잠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나비의 옆에 다시 누웠다.
희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나비의 볼을 쓰다듬었다.
나비의 몸은 조금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부드러웠다.
희나는 나비를 살며시 끌어안고 그 부드러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희나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희나는 짧은 숨을 몇 번이나 뱉으면서 나비의 귀에 코를 문질렀다.
그러곤 나비의 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나비. 내 고양이. 사랑하는 내 고양이.”
희나는 속삭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직 나비가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희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햇살 내리쬐는 방에서 나비와 누워있었다.
희나는 몰랐다. 고양이 신이 마지막으로 나비의 영혼을 이 지상에 보내주었다는 걸.
나비가 다시 한 번 이 지상에 찾아와, 희나의 눈물을 핥아주었다는 걸.
나비는 부드러운 볼을 희나의 턱에 비볐다. 그렇게 사랑하는 희나의 온기를 기억했다.
쫑긋 귀를 새워 그 아름다운 숨소리를 기억했고, 까슬한 혓바닥 끝에 짜고 슬픈 눈물의 맛을 기억했다.
결국 사랑밖에 줄 수 없었다.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사랑밖에.
하지만 뒤늦게 나비는 깨달았다. 자신이 희나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도 결국 사랑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선물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어서 나비는 행복한 고양이였다.
나비는 천천히 등을 돌려 햇빛 속으로 걸어갔다. 햇빛 속 무지개다리 위로 걸어갔다.
그렇게 맑고 화창한 햇빛 속에서, 무지개다리는 천천히 사라졌다.
<안녕,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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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