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부원 한유빈
들어가며: 전기차의 성장과 캐즘 현상
작년 한 해 국내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주제는 단연코 전기차 관련주들의 두드러진 상승세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인해 공급망이 재편되고 기업들의 ESG 경영 도입이 가속화되는 등, 지속 가능한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은 전세계 기업들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차세대 시장으로 꼽혀왔던 전기차 산업 역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전기차를 생산하는 완성체 업체들은 유래없는 호황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24년에 접어든 지금, 전기차의 성장세는 예전같지 않다. 시장의 급격한 수요 둔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인지한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을 낮춘 보급형 차종을 출시하거나 하이브리드차의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전기차의 판매 감소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실제 미국의 최대 완성차 업체 중 하나인 제너럴 모터스(GM)는 올해 1월 개최된 실적 발표회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그동안 중국에서만 판매되어 오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북미 지역에서 다시 출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사실 신제품의 출시 이후 이와 같은 수요 둔화 현상, 즉 캐즘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놀랍지 않은 현상이다. 캐즘이란 첨단 기술이 활용된 제품이 소수의 혁신적 성향을 지닌 이용자들에게 소비되는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 대중화로 이어지기 전, 일시적으로 시장에서의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캐즘이 일어나는 원인은 다양한데, 현재 전기차 수요 둔화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고가의 제품 가격, 신기술의 안정성 우려 등은 흔히 캐즘 현상을 불러오는 주된 요인들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촉발된 캐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상품의 가격은 하락하고, 기술의 진입 장벽은 낮아지게 된다. 최근 샤오미, 테슬라 등의 완성차 업체들이 저가의 전기차 모델을 시장에 출시하고, 배터리 회사들의 안전한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 역시 전기차의 소비가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의 경우 캐즘 현상을 불러온 여러 요인 중 제품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고유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바로 전기차의 이용을 위해서는 충전시설이라는 부수적인 인프라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작년 11월 실시했던 설문조사 결과 전기차를 이용 중인 차주들이 구매를 추천하지 않는 사유 1위로 충전 인프라의 부족이 꼽히기도 했던 만큼, 오늘날 전기차의 이용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꼽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단연코 충전의 번거로움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충전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개선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기울여왔지만, 이용자들이 불편해하는 지점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 말은 즉 ‘충전 인프라 시장’, 즉 현재 국내 전기차 이용자들이 충전 서비스를 이용할 때 활용하게 되는 인프라에는 아직 수많은 페인포인트가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 충전 인프라 시장은 어떠한 지점에 도달해있으며, 어떠한 문제점이 존재하는 것일까? 본 글에서는 완성차 시장에 비해 아직 독자들에게 생소한 충전 인프라 시장을 소개하고, 현재 시장이 맞닥뜨리고 있는 한계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전기차 시장과 충전 인프라 시장의 상관관계
테슬라, 샤오미 등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한 여러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 완성전기차 시장 외에도, 전기차의 수요에서 파생되어 탄생한 새로운 시장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시장들 중에서도 ‘충전 인프라 시장’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이루어짐에 따라 블루오션으로 함께 부상하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이와 같이 충전 인프라 시장을 전기차의 파생 시장으로서 정의하는 것은, 충전 인프라는 전기차가 이용자들에게 보급된 이후의 부차적인 수요를 후속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하게 된 시장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실제 국내 충전 인프라 시장은 전기차의 보급이 확산되며 그 성장 궤도를 함께 해왔다. 이는 국내 전기차 충전기의 보급 대수가 19년부터 현재까지 연평균 약 49.6%의 추이로 성장해옴에 따라, 충전기 대수 역시 연평균 약 54.4%의 성장률로 전기차의 보급과 매우 유사한 추이로 성장해왔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전 인프라 시장의 성장은 전기차의 보급이라는 원인에 따른 결과값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흔히 전기차 시장과 충전 인프라 시장의 관계는 닭과 달걀의 관계에 비유된다. 전기차가 시장에 보급됨에 따라 충전 인프라 시장이 파생된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전기자동차의 원활한 보급은 충전 인프라의 확충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충전 시장의 성장은 전기차의 성장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와 같은 상관 관계를 도출해내기 위해 대구광역시의 구별 충전기 등록 대수와 전기차 등록 대수 간 상관계수를 도출해 본 결과, 전기차의 등록 대수는 충전소 인프라의 확충에 비례적으로 증가한다는 결과값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충전 인프라의 선제적인 구축은 전기차의 보급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기에, 전기차의 빠른 확산을 위해서는 충전 인프라의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2. 국내 충전 인프라 시장 현황
지금까지 전기차의 캐즘 현상, 그리고 캐즘을 불러온 원인으로서 충전 인프라 시장의 영향력을 조망해보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시장의 수요 둔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인 전기차의 ‘충전 인프라’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구나 전자 제품에 충전기를 연결시켜 충전을 해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비슷하게 전기차 역시 연결구에 충전기를 연결시켜 주행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형식으로 충전이 이루어진다. 본 글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광의의 충전 인프라 시장’은 이렇게 전기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충전기를 제조하고, 제조된 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한 부지와 시설 등의 인프라를 제공하고, 나아가 이용자들에게 편리한 충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을 모두 포괄한다.
광의의 충전 인프라 시장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 이해 관계자인 ‘충전기 제조사’는 충전기를 물리적으로 제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은 충전기에 들어가는 커넥터와 소켓 등의 부품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충전기를 설계하여 물리적으로 제조한다. 이들이 제조하는 충전기는 급속 충전기와 완속 충전기로 구분되는데, 급속 충전기는 직류 전력을 배터리로 직접 공급해 30분 내외로 완충이 가능한 반면 완속 충전기는 별도의 장치를 통해 전류를 직류로 변환하여 완충까지 약 5~12시간이 걸린다. 국내에서는 SK그룹이 21년 충전기 제조사 시그넷이브이를 인수하여 탄생한 SK시그넷과 더불어, 전통적인 제조업체인 대영채비, 이브이시스, 피앤이시스템즈 등이 대표적인 충전기 제조사로 꼽힌다.
두 번째 이해 관계자인 충전소 운영사는 CPO (Charge Point Operator)라고 불린다. 이들은 충전 구역을 확보한 후 충전소를 구성해 운영하고, 사후적으로 충전기를 관리하고 보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물리적인 시설물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인프라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기에,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력과 부지 선정 능력, 충전기 관리 및 유지 보수 능력 등이 핵심 역량으로 꼽힌다. 더불어 실제 시장의 핵심이 되는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사자이기에 CPO는 충전소의 운영 방식을 고도화하여 이용자의 시간 및 공간적 제약을 완화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국내에서는 GS커넥트가 23년 차지비를 인수해 탄생한 GS차지비가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SK일렉링크, 에버온, 대영채비, 파워 큐브코리아 등이 주요 사업자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충전 서비스 이용과 관련된 편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 전기차 이용자가 근처의 충전소 위치를 검색하고 현재 이용 가능한 충전기의 대수를 확인할 수 있는 관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용자가 서로 다른 충전소 운영사의 어플에 별도의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로밍 기능을 제공하거나, 충전이 끝난 후 이용 요금을 지불하는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이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일렉베리’ 어플을 운영 중인 티비유, ‘소프트 베리’ 어플을 운영 중인 EV Infra 등이 이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에 해당되며, 최근 많은 CPO들이 자체적으로 이용자들을 위한 플랫폼을 운영하기도 하는 등 CPO와 플랫폼 운영 사업자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현재 국내 충전 인프라 시장은 아직 성숙기에 접어들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이며, 특히 두 번째 이해당사자인 CPO의 경우 여러 사업자가 경쟁하고 있는 매우 파편화된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내연기관차와 비교해보았을 때 SK에너지,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4개의 사업자가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국내 내수 경질유 시장과 달리, 전기차 CPO의 경우 무려 20개의 사업자가 시장의 90%을 점유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집계되고 있는 운영기관의 수 역시 100개가 넘어간다.
3. 국내 충전 인프라 시장의 페인포인트와 해소 방안
많은 수의 사업자들이 시장에 존재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충전기 보급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실제 국토교통부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된 충전기의 대수는 20년 기준 6만 대에서 24만 대로 4배 가까이 증가해 매우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다. 전기차의 보급이 시대적인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와 같은 발빠른 충전 인프라의 보급은 유의미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업자가 존재하고 그만큼 많은 서비스의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의 이용자들은 충전 경험에서 여러가지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서비스 업체인 ‘아론’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약 79%의 이용자가 충전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전기차 구입 직후와 대비해 어려움이 개선되었다고 느끼는 차주는 27%에 불과했다. 인터넷 포털에서는 충전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다룬 뉴스 기사들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아파트 내에서 충전 관련 분쟁이 벌어지는 사례 역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앞서 언급한 국내 CPO 시장이 현재와 같이 파편화된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 전기차 보급 초기 정부는 충전 인프라 확충에 있어 '수량'을 최우선의 평가 척도로 삼았다. 단기간 내에 빠르게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실제 충전기가 사용되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 대수에 비례한 보조금을 지급한 것이다. 초기에는 충전기 당 5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했으며 이후 조금씩 규모를 축소해 21년에는 200만 원을 지원했지만, 충전기의 구매 및 설치에 소요되는 금액을 고려했을 때 이는 여전히 10~20%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였다. 설치 대수에 따라 상당한 액수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구조는 실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무작위식 설치라는 결과를 낳았고, 일회성의 보조금을 노린 CPO들이 시장에 대거 진입하게 되었다.
전기차의 소유주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점인 ‘충전소의 부족’ 문제를 떠올려보자. 상대적인 기준을 적용했을 때 한국의 충전기 1대당 전기차의 대수는 약 2대로, 전기차의 강국으로 여겨지는 유럽(13대), 그리고 세계 평균(10대)과 비교하였을 때 크게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의 소유주들이 여전히 충전소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물리적인 설치 대수를 늘리는 인프라 확장에 치중하는 나머지, 실수요를 고려한 위치 선정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자동차산업연합회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 충전기 29만 8702대 중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충전기의 비중은 약 24.8%에 달하며, 30일 동안 사용되지 않은 비중 역시 11.6%에 달했다. 충전기의 설치 대수가 아닌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무작위성 설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자료이다.
이용자들이 호소하는 또 다른 문제인 ‘충전기 고장’ 문제 역시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익을 내며 사업을 지속하려는 의도가 아닌 일회성 보조금을 노린 일부 CPO들은 충전기 품질 관리와 고장 문제에 대응하는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충전기 설치 후 유지보수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부족하여, 충전기가 고장나도 신속하게 수리하지 않거나 아예 방치하는 것이다. 이는 충전기의 빈번한 고장 문제로 이어졌으며, 충전 서비스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도와 만족도를 저하시켰다.
전기차의 빠른 보급을 위해 인프라 확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정부의 정책으로 많은 충전소가 설치되어 전기차 보급의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설치에 대한 적절한 고려와 조율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설치 대수에만 비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실질적인 이용률을 간과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단기적인 보조금 수령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자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는 충전소의 품질과 서비스의 일관성을 떨어뜨렸으며, 현재 전기차 이용자들이 호소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불편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여러 불편함들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충전소 부족 문제, 그리고 충전기 고장의 문제 모두 초기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서 기인한 점이 존재하기에, 현행의 보조금 제도를 개선하여 민간 사업자들이 충전 사업을 장기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와 같이 설치 대수에 비례하여 지급되는 보조금 대신, 실제 이용자들에 의해 구매되는 전력의 킬로와트 당 보조금, 충전기 고장으로 인한 정전 패널티를 차감한 보조금 등 성과에 기반한 사후적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환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선불 보조금 중 일부를 위와 같은 방식으로 변환한다면 CPO들은 추후 충전기 설치에 있어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치 선정을 최적화하고, 사후적으로 충전기를 관리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정부의 정책 변화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역량을 기르기 위한 민간사업자들의 노력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충전기 고장 문제의 경우, 충전기의 상태를 자체적으로 진단하고 고장 이슈에 대응하는 기술을 강화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CPO인 SK일렉링크는 충전기 제조사가 직접 설치된 충전기의 작동 여부를 시스템 상에서 확인하고 단시간 내에 현장에 출동하는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또 다른 CPO인 대영채비 역시 플랫폼에 원격 리셋, 오류 자체 진단 등의 기술을 적용해 유지 보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충전기 제조사인 SK시그넷은 SK텔레콤의 통신망 인프라 유지보수 자회사인 SK오앤에스와 양해 각서를 체결하여, 이동통신사 망에 기반한 관제 기술로 안정적인 데이터를 송수신하여 충전기 수리까지 걸리는 기간을 1일 이내로 단축하기로 협약하였다.
당장 이용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 역시, 이미 설치된 충전기들을 이용자들이 실수요에 따라 적재 적소에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PO인 대영채비는 전기차 이용자가 현재 이동 중인 경로 상 가용 충전기를 손쉽게 파악하고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미리 충전 서비스를 예약할 수 있는 ‘충전 선점 시스템’ 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국내의 보조금 제도가 선제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마중물로서 작용했다면, 이제는 시장의 자립을 보장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성과에 기반해 보조금을 지급하여 시장기능이 활성화된다면, CPO들은 적재적소에 충전기를 배치하여 사용 편의성과 안정성을 향상함에 따른 인센티브를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점진적으로 보조금의 의존도를 낮춘다면 민간 사업자들의 기술 개발과 효율성 증대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기차의 이용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4. 전세계의 캐즘 극복을 위한 노력
지금까지 국내 충전 인프라 시장의 여러 문제점들이 현행 보조금 제도의 개선, 그리고 민간 사업자들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전기차가 현재의 캐즘을 극복하고 완전히 상용화가 될 미래까지 어떠한 이슈가 존재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세계 기업들의 연구 현황에 대해 알아보자.
현재 전세계 충전 인프라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는 충전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다. 차종마다 차이가 존재하지만, 완속 충전기로 전기차를 충전할 경우 최대 10시간이 소요되며, 급속 충전기는 최대 한 시간이 걸린다. 내연기관차의 주유가 약 5분 안에 완료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장시간의 충전으로 인한 번거로움은 전기차의 완전한 상용화까지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만큼 빠르게 충전이 가능하다면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관측되는 이유이다.
이에 전세계의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제조 업체들은 충전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한국과 유럽의 제조사들은 일반적으로 완성차에 장착되어왔던 400V 배터리를 넘어, 800V의 고전압을 활용한 초고속 충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이 접목된 국내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에는 SK온이 개발한 흑연 입자 기반의 특수 배터리셀이 장착되어 18분 안에 전기차를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 포르쉐의 타이칸 역시 실리콘 음극재를 탑재한 배터리가 장착되어 22분 이내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한 초고속 충전 기술이 접목되었다.
반면 중국의 제조사들은 ‘배터리 스왑’이라 불리는 교체식 배터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배터리로 갈아 끼우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스왑 기술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은 전기차 제조 업체인 ‘니오’로, 2018년 교체 서비스의 운영을 시작한 이래 현재 약 500곳 이상의 교환소를 중국 전역에서 운영 중이다. 교환소에서는 5분 안에 새로운 배터리로의 교체가 완료되며, 자동화된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어 인력을 최소한으로 투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현재 중국 정부는 이와 같은 배터리 스왑 기술에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기에, 국가 차원의 차세대 산업으로서 시장의 빠른 성장이 기대된다.
나아가 미래에 전기차가 완전히 상용화될 시대의 새로운 충전 방식으로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전기차를 무선으로 충전하는 ‘무선 전력 전송’ 기술이다. 현재와 같이 물리적인 충전 인프라 시설을 지상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송전 시스템을 바닥에 매립하여 전력을 공급하기에, 오늘날의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같은 송전 시스템을 도로의 정지선, 주차장의 바닥,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 등에 설치한다면 이용자의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기술을 세계 최초로 실용화하였던 국가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이다. 2009년 KAIST는 도로주행용 무선 충전 기술개발에 성공하여 미국 주간지 타임의 ‘2010 세계 최고 발명 50’에 선정되기도 하였지만, 전기차라는 개념 자체도 생소했던 당시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전기차가 시장에 보급되며 무선 충전 기술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무선 충전 기술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기업은 이스라엘의 일렉트리온으로, 2020년 텔아비브에 약 700m 길이의 무선충전 도로를 설치해 전기버스를 운행하여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해보였다. 이 외에도 퀄컴의 무선충전 사업부를 인수한 미국의 스타트업 위트리시티, 자기유도기술을 전기차에 접목 중인 노르웨이의 기업 ENRX 등이 무선 충전 기술을 연구 중인 기업들이다. 아직은 여러가지 기술적 한계가 존재하기에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미 무선 충전 기술을 향한 경쟁이 시작된 만큼 먼 미래에는 충전 시설을 방문하는 번거로움 없이 전기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가며
자동차 산업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 개발된 신제품이 시장에 선보여지고 대중의 선택을 받아 시장의 수요가 생겨나는 일반적인 시장과 달리,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달성되어야 하는 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전기차의 확산을 위해 충전 인프라에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 올해의 캐즘 현상에도 불구하고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사업을 완전히 중단하지 않는 이유이다.
하지만 현재의 충전 인프라 시장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기자동차와 새로운 모빌리티의 미래는 너무나 먼 미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2009년 세계 최초로 무선 충전 기술을 개발했으나,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갔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전기차는 이미 상용화되었고, 전 세계의 많은 기업들은 새로운 충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불가능한 기술처럼 보일지라도, 혁신적인 기술은 결국 전기차의 대중화를 이끌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국내와 전 세계의 충전 시장이 전기차가 완전히 상용화되는 그날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충전 인프라의 확충은 단순한 보급 여부의 문제가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우리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여러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력, 그리고 기술의 혁신을 통해 전기차가 완전히 상용화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문헌
황재완, 임한규, 박은주, [전기차 충전인프라와 전기차 등록의 상관관계를 이용한 효율적 인프라 구축 방안], 한국정보기술학회, 2023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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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혁, “전기차 비추천 사유, ‘충전 인프라 부족’ 최다”, 안전신문, 2023-11-14
“전기차 시대에 충전소 시장도 각축전…스타트업까지 '삼파전'”, IB토마토, 2023-11-03
오철, “새 출발하는 SK일렉링크...‘이것을 주목하라’”, 전기신문, 2023-03-13
조규원, “서울시, 전기차 충전소에도 주소가 생긴다!”, 골든타임즈, 2023-04-24
박한나, “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 경질유시장 `3위 쟁탈전`”, 디지털타임스, 2024-03-31
유창욱, “영세업체 난립·고장 잦아…"인프라 부실땐 전기차 대중화도 물거품"”, 서울경제, 2023-09-11
이동재, “전기차 이용자 79% “전기차 충전 불편함 느껴본 적 있다””, HelloT, 2024-01-05
박태준, “충전기 보급률 세계 1위지만 소비자 접근성은 떨어져”, KDI 경제정보센터 10월 호
신석주, “전기차 충전기 세계 1위에도 부족함 느끼는 이유”, 에너지 신문, 2023-08-25
이건율, “4대 중 1대 '개점휴업'…전기차 충전기 관리 '비상'”, 서울경제, 2024-04-22
오철, “중요성 커지는 '유지보수’...환경부 급속충전기 유지보수 위탁운영 세분화”, 전기신문, 2024-01-16
오철, “SK시그넷-SK오앤에스, 전기차 충전인프라 혁신 나선다”, 전기 신문, 2022-10-28
정상필, “대영채비, 충전선점시스템 CES 2023 혁신상 수상”, 에너지플랫폼뉴스, 2023-01-09
임경업, “NYT "현대차의 18분 전기차 완충 기술, 가장 큰 쿠데타"”, 조선 경제, 2022-04-13
장성혁, “포르쉐 타이칸, '18분 급속 충전'…전기차 충전 시간, 실리콘 음극재로 반 토막”, 매일신문, 2024-03-06
이강준, “"급속 충전도 속터진다"…'빨리, 더 빨리' 외치는 전기차 회사들”, 머니투데이, 2021-06-24
김미영, “전기차 충전 않고 갈아 낀다…'배터리 스왑' 이끄는 中 3인방”, 비즈니스플러스, 2021-10-25
한애란, “달리면서 무선충전…‘전기도로’가 게임체인저 될까”, 동아일보, 2023-07-01
그림 및 도표
[그림 1] 국내 전기차 및 충전소 보급 현황
“전기차 시대에 충전소 시장도 각축전…스타트업까지 '삼파전'”, IB토마토, 2023-11-03
[그림 2] SK일렉링크의 전기차 충전소
오철, “새 출발하는 SK일렉링크...‘이것을 주목하라’”, 전기신문, 2023-03-13
[그림 3] 티비유의 일렉베리 충전 플랫폼
조규원, “서울시, 전기차 충전소에도 주소가 생긴다!”, 골든타임즈, 2023-04-24
[그림 4] 상위 20개 운영기관 충전 기기 현황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 2023-10-11, 이미지 제작 (주)헤리트
[그림5] 이스라엘의 텔아이브 시내에 적용된 전기 도로
한애란, “달리면서 무선충전…‘전기도로’가 게임체인저 될까”, 동아일보, 2023-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