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으로 물결을 매듭짓는 법

소롱

by 상경논총

“너처럼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망해서 다시 이 학원에 돌아올거야.”


공부의 끈을 잡기로 결심한 중학교 3학년 겨울, 독학을 다짐하며 3년 간 학원비를 바쳤던 영어학원에서 나의 순진한 포부를 말하자마자 들었던 첫 마디이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학생이 아니었기에 면전에서 어찌할 도리 없이 분을 삭히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안온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부족함을 살면서 인식한 적이 없었건만, 공부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내면의 의지인지 알량한 자존심이 만들어낸 단기적인 폭발력인지도 주지하지도 못하고 나의 ‘부족함’을 철저히 감각하며 아파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나는 그 이후로 고등학교에서 문과 전교 1등을,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입학을, 3학기 연속 전액 장학금을 이뤄냈다. 적잖은 성과를 뒤로하고 여전히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한 탓은 부족함이 준 ‘여운’이 성취가 준 ‘충만’보다 내면적인 존재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부족함과 실패에서 오는 ‘여운’은 때로는 그 무엇으로도 담을 수 없는 마음 속은 크고 공허한 싱크홀을 만든다. 아쉬움에 허덕인 나는 이것저것 가져와 싱크홀에 부어보지만 한 번도 가득 채워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싱크홀이 결국 유익한 여정을 위한 가장 큰 발걸음이 되어준다. 오늘도 채우지 못할 것을 알지만 마음의 빈 자리에 담기 위한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해 대우관으로, 도서관으로, 독서실로, 학회로, 논방으로 향한다.


사실 모두가 마음 속에 빈자리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놓쳐 버린 첫사랑, 닿지 못한 진심, 이루지 못한 학벌이나 직업, 어울리지 못한 친구, 가보지 못한 장소, 기다려주지 못한 시간, 사기 전에 올라버린 주식이나 부동산 등등. 한계효용은 체감하더라도 한계비용이 체증하는 대원칙에 노출된 인간은 본질적으로 충분감보다 여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마음 속의 싱크홀을 보며 저주하기보다, ‘여운’이 가지는 내면적 지배력을 이정표 삼아 인생의 ‘물결’을 ‘매듭’지어야 한다. 당장의 아쉬움이 남긴 감정적 격동은 부메랑처럼 여운이 되어 오랜 기간 은은한 빛깔을 발한다. 잘한 일보다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던 기억들이 더 값지게 느껴지고, 오래 뇌리에 박히는 이유이다. 글매력이 없어 못난 글만 쓰다 가는 상경논총에 더 큰 여운이 남는 이유이다. 이리저리 출렁이는 내면의 ‘물결’은 여운의 골짜기를 만나 비로소 흐름을 가지게 된다.


다만 여운과 피해의식을 구별해야 한다. 여운은 아쉬움과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이고, 피해의식은 자신의 부족함을 외부의 원인으로 돌리는 저열한 태도이다. 집에 돈이 없어서, 누가 아파서, 할 게 많아서, 정신이 힘들어서. 상황 탓하다간 똑같은 상황이 오면 또 진다. 피해의식을 무기로 아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을 투표용지로 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음이 체감되는 요즘이다. 여운의 가치가 더 이상 퇴색되지 않기를, 우리 사회의 물결이 더 성숙하게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희망하며 두서 없는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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