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 함께 보낸 시간, 예상치 못한 충돌까지 모든 순간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안에 흔적을 남긴다. 그 영향들이 오래 머물러 생각과 태도에 스며들 때, 나는 그것을 ‘여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여운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이루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다양한 관계 속에 놓인다. 그들이 남기는 여운을 때로는 우리를 뒤로 밀어내고, 때로는 멈춰 서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에 한순간에 흔들릴 때도 있고, 같은 말이 어떤 날에는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여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결국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지 결정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여운은 피할 수 없지만, 그 흔적이 내 중심을 대신하게 둬서는 안 된다. 중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단단히 붙드는 과정 자체가 결국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
나 역시 주변에서 오는 여운이 지나치게 흔들렸던 사람이다.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로부터 긍정적인 힘을 많이 받으며 성장해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말에 지나치게 기대게 되고 타인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득 이 모든 영향들을 걷어내고 나면 그 속은 텅 비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생각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 여운들의 조각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여운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거부하며 선별하는 기준은 내 중심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극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힘이 필요했다. 타인의 기준과 시선으로 들여다보기보다, 나를 지탱하는 생각과 가치를 먼저 세우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래야 관계가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
우리는 여운을 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여운을 남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주체적으로 서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태도로 하루를 살아가느냐가 곧 누군가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결정한다. 게다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관계의 속도가 빠르고, 연결 폭은 넓지만, 깊이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수많은 정보와 기준이 하루에도 여러 번 쏟아지는 환경에서 작은 평가 하나, 짧은 비교 하나가 생각보다 쉽게 우리의 방향을 흔든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중심을 잡아야한다. 여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으로 승화시켜야한다. 관계가 남긴 흔적을 눌러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석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타인들이 만든 조각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여운들로 나를 채울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수 많은 관계가 지나간 뒤 남은 여운 속에 서 있는 일이지만, 그 여운의 모양을 결정하는 건 언제나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독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