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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Oct 25. 2024

불금이라고 꼭 불태울 필요는

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누구에게나 각자의 불금이 있다.




반년만에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맞는 금요일이다. 퇴근길에 곧장 집으로 들어가기 아쉬워 어디를 가볼까 고민했지만 마땅한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홍대나 성수 이런 사람 많은 곳은 이제 힘들다. 일단 YES24 중고서점에 가서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을 사고 집에 돌아왔다. 표지도 접히지 않은 거의 새 책을 손에 넣고 나니 굳이 어딜 더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곱창 가게며 맥줏집이며 해방의 자유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를 지나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두부와 계란, 참깨 드레싱을 얹은 양배추 샐러드를 먹고 후식으로 어제 엄마가 보내준 사과도 먹고 밥 먹으면서 보던 첫사랑에 대한 토크 영상을 마저 보며 설거지를 했다. 내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 '러브레터'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상 속 세 사람의 수다에 혼잣말로나마 동참했다.


저녁 먹기 전에 돌려놓은 빨래를 다 널고 나니 그래도 8시였다. 아무래도 아쉬워 글 쓰러 도서관이라도 가자 하고 다시 나섰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오늘은 도서관이 쉬는 금요일이라는 사실을. 들고 간 책만 반납하고 나온 김에 노트를 사러 다이소에 갔지만 원하는 노트가 없었다. 두 번째 허탕이었다. 그러고도 이제 겨우 9시길래 카페라도 가서 앉아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양치를 했고 지금은 씁쓸한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아서 결국 또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산책 자알 했다'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갑자기 요가를 하고 싶어져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고르고 곧장 매트 위에 올랐다. 오랜만에 1시간을 해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역대급으로 몰입한 수련이었다. 이렇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느끼면서 수련에 집중한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나마스떼" 하고 마치는 인사를 하고 나니 기운이 쪽 빠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어떤 에너지로 꽈악 채워진 기분이었다. 조금 과장 보태서 영혼이 맑아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등쿠션에 기대앉아(사실 거의 누워)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머릿속에 흐릿하게 있는 무언가들을 눈에 보이는 글자들로 옮겨적고 있다. 글 같은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반 년째, 이제는 말보다 글이 편해진 수다쟁이면서 외톨이에게 글은 무슨 이야기든 잘 들어주는,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좋은 친구다. 곱창 가게에 맥줏집에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친구.


나의 랜선 요가 선생님인 요가소년님께서 수련 중에 자주 하시는 말이 있다. "모두 각자의 수련이 있습니다."라는, 내가 정말 애정하는 말.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오늘처럼 활기 넘치는 불금의 거리를 홀로 지날 때면 사무치는 외로움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고 나는 왜 외톨이어서 저들처럼 불타는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지 자책도 했었다. 부럽고 질투 나는 마음에 어두운 방 안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혼자서라도 불태워야 덜 억울할 것 같았고 덜 외로울 것 같았다. 매번 곱절의 고독을 느끼며 토요일을 맞이했지만 그래도 반복했다. 금요일 저녁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불금이라고 해서 모두가 친구를 만나고 음주가무를 즐길 필요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안다. 괴상한 분노심에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보다 어제 저녁에도 했던 요가를 수련하는 것이 내 인생을 더 충만하게 해 준다는 사실도 이제는 이해한다. 누군가에겐 함께 불태울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의 안타까운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서 술로 불태우는 금요일 저녁보다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내는 고요한 금요일 저녁이 더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불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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