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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Oct 25. 2024

엄마가 사과를 보냈다

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아마 나는 평생 우리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햇사과 나왔다 캐서 보냈어."


어제 저녁에 통화하던 엄마가 대뜸 말했다. 엄마 아이디로 같이 쓰는 쿠팡에 내 서울 집 주소도 등록을 해놨더니 엄마가 종종 깜짝 선물을 보내주는데, 이번에는 사과란다. 말로는 "엄마 묵지 말라 보내노~" 했지만 속으로는 '아싸!'를 외쳤다. 마침 집에 있던 샤인머스캣을 다 먹어서 과일이 똑 떨어진 참이었는데 그보다 더 귀한 사과라니, 그것도 무려 '햇'사과.


오늘 저녁, 싱숭생숭한 마음에 퇴근하고 한강에서 멍 때리고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서 박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엄마가 말했던 그 사과였다. 저녁거리 설거지를 해놓고 얼른 사과를 깎아 먹어봤다. 아직은 약간 초록색 끼가 도는 사과들 중에서 달큰한 사과 향을 뽐내고 있는 한 알을 골랐는데 다행히 아삭아삭하고 그런대로 달았다.


엄마가 보내준 햇사과


약간 덜 익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그냥 맛있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8시 반, 엄마가 있는 시골에서는 밤 12시나 다름없는 야심한 시간이라 엄마가 잠들기 전에 감사 인사를 전해야 했다. 말은 안 해도 사과 잘 받았는지 궁금하지만 딸 방해할까봐 전화도 못 하고 있을 거다, 우리 엄마는.


"엄마, 사과 엄청 맛있네. 근데 엄청 비싸드만 말라꼬 보내노"


그렇다. 사과를 받고 나서 문득 가격이 궁금해 쿠팡 주문목록을 확인해 봤더니 5kg에 3만 6천 원이었다. 10kg도 아니고 5kg에! 6개월을 놀고 이제 겨우 한 달짜리 기간제 일을 시작한 딸로서 죄스러워지는 가격이었다. 엄마도 절대 이 돈 내고 안 사 먹을 텐데 이 못난 딸래미가 뭐가 이쁘다고 우리 엄마는 이리도 비싼 사과를 시켜주는 건지 알 수 없다.


괜히 며칠 전에 건강검진 받고서 저혈압이 나왔네 어쩌네 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혼자서도 아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뻥 쳐도 모자랄 판국에 나보다 아프면 더 아픈, 수십 배는 더 고생하는 엄마에게 그깟 혈압 좀 낮게 나왔다고 징징댔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보낸 게 분명했다. 한창 돈 벌어서 효도해야 할 30대인 내가 이제 환갑이 몇 년 남지 않은 엄마에게 사과를 보내주지는 못할 망정 거꾸로 받고 있는 이 상황이 과연 맞는 걸까.


"아침 저녁으로 한 개씩 깎아 묵어. 잘 무야 돼."


우리 엄마는 왜 나한테 이 비싼 사과를 보내줄까. "집에는 다른 거 무면 돼"라는 걸 보면 정작 집에는 햇사과는커녕 묵은 사과도 없는 것 같은데. 엄마는 내가 답답하지도 않은 걸까? 아무리 몇 달간 생리를 안 할 만큼 몸이 망가졌었고 심리 상담을 받으며 몇 년 묵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중이라지만 내가 봐도 나 자신이 보기 싫은데, 수십 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일만 하며 살아온 엄마 눈엔 더 한심해 보일 텐데, 그래도 우리 엄마는 늘 밥 잘 챙겨 먹으라고 걱정해 준다. 팔자 좋은 딸래미가 하는 일이라곤 밥 먹는 것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아무래도 우리 엄마를 이해하는 건 언젠가 다른 세상에서 엄마를 다시 만나는 날이 와도 불가능할 것 같다. "원래 엄마들은 다 그래"라는 엄마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작금의 사회가 보여주고 있으니까, 나는 내 자식을 낳아도 그렇게까진 못할 것 같다는 내 마음이 말해주고 있으니까. 이 철없는 자식은 결코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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