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아마 나는 평생 우리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햇사과 나왔다 캐서 보냈어."
어제 저녁에 통화하던 엄마가 대뜸 말했다. 엄마 아이디로 같이 쓰는 쿠팡에 내 서울 집 주소도 등록을 해놨더니 엄마가 종종 깜짝 선물을 보내주는데, 이번에는 사과란다. 말로는 "엄마 묵지 말라 보내노~" 했지만 속으로는 '아싸!'를 외쳤다. 마침 집에 있던 샤인머스캣을 다 먹어서 과일이 똑 떨어진 참이었는데 그보다 더 귀한 사과라니, 그것도 무려 '햇'사과.
오늘 저녁, 싱숭생숭한 마음에 퇴근하고 한강에서 멍 때리고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서 박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엄마가 말했던 그 사과였다. 저녁거리 설거지를 해놓고 얼른 사과를 깎아 먹어봤다. 아직은 약간 초록색 끼가 도는 사과들 중에서 달큰한 사과 향을 뽐내고 있는 한 알을 골랐는데 다행히 아삭아삭하고 그런대로 달았다.
약간 덜 익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그냥 맛있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8시 반, 엄마가 있는 시골에서는 밤 12시나 다름없는 야심한 시간이라 엄마가 잠들기 전에 감사 인사를 전해야 했다. 말은 안 해도 사과 잘 받았는지 궁금하지만 딸 방해할까봐 전화도 못 하고 있을 거다, 우리 엄마는.
"엄마, 사과 엄청 맛있네. 근데 엄청 비싸드만 말라꼬 보내노"
그렇다. 사과를 받고 나서 문득 가격이 궁금해 쿠팡 주문목록을 확인해 봤더니 5kg에 3만 6천 원이었다. 10kg도 아니고 5kg에! 6개월을 놀고 이제 겨우 한 달짜리 기간제 일을 시작한 딸로서 죄스러워지는 가격이었다. 엄마도 절대 이 돈 내고 안 사 먹을 텐데 이 못난 딸래미가 뭐가 이쁘다고 우리 엄마는 이리도 비싼 사과를 시켜주는 건지 알 수 없다.
괜히 며칠 전에 건강검진 받고서 저혈압이 나왔네 어쩌네 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혼자서도 아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뻥 쳐도 모자랄 판국에 나보다 아프면 더 아픈, 수십 배는 더 고생하는 엄마에게 그깟 혈압 좀 낮게 나왔다고 징징댔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보낸 게 분명했다. 한창 돈 벌어서 효도해야 할 30대인 내가 이제 환갑이 몇 년 남지 않은 엄마에게 사과를 보내주지는 못할 망정 거꾸로 받고 있는 이 상황이 과연 맞는 걸까.
"아침 저녁으로 한 개씩 깎아 묵어. 잘 무야 돼."
우리 엄마는 왜 나한테 이 비싼 사과를 보내줄까. "집에는 다른 거 무면 돼"라는 걸 보면 정작 집에는 햇사과는커녕 묵은 사과도 없는 것 같은데. 엄마는 내가 답답하지도 않은 걸까? 아무리 몇 달간 생리를 안 할 만큼 몸이 망가졌었고 심리 상담을 받으며 몇 년 묵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중이라지만 내가 봐도 나 자신이 보기 싫은데, 수십 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일만 하며 살아온 엄마 눈엔 더 한심해 보일 텐데, 그래도 우리 엄마는 늘 밥 잘 챙겨 먹으라고 걱정해 준다. 팔자 좋은 딸래미가 하는 일이라곤 밥 먹는 것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아무래도 우리 엄마를 이해하는 건 언젠가 다른 세상에서 엄마를 다시 만나는 날이 와도 불가능할 것 같다. "원래 엄마들은 다 그래"라는 엄마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작금의 사회가 보여주고 있으니까, 나는 내 자식을 낳아도 그렇게까진 못할 것 같다는 내 마음이 말해주고 있으니까. 이 철없는 자식은 결코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