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주야는 언제 결혼하노“
스피커폰 너머로 아빠 친구 딸의 결혼식장에 와있다는 엄마의 물음이 들려왔다. 일주일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갑자기 먼저 전화해서 한다는 말이 결혼이라니. 신랑은 커녕 남자친구도 없는 거 알면서 왠 결혼.
몇 달 전의 나였다면 백프로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아, 엄마! 내 결혼 안 한다캤자나!!!“
사실은 하고 싶다. 그 누구보다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어릴 때부터 현모양처는 늘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아니 그래서 엄마가, 아빠가 결혼 얘기를 꺼내면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누가 결혼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나, 못 하는 거지! 직업도 돈도 아름다운 외모도 없는, 가진 거라곤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우울 밖에 없는 나랑 누가 결혼해 주겠어?
엄마아빠는 집 한 채 사줄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결혼 타령, 외손주 타령하는 건지 들을 때마다 짜증났다. 가뜩이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은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 한 대 맞고 잔뜩 부풀어 올랐었다. 마치 복어마냥. 사실은 부모 탓 할 게 아니라 이 나이 먹도록 할 줄 아는 것도, 모아둔 돈도 없는 나를 질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도 엉뚱한 곳에 분풀이를 했었었다. 못나고 어리석고 한심하게도.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뿌려놓은 축의금 어떻게 하냐는 엄마 말에 짜증 대신 농으로 받아쳤다.
“우짜겠노, 대신 선물 사달라 캐라~~”
물론 여전히 결혼은 하고 싶다. 너무나도. 쌀쌀한 거리에서 붕어빵 한 봉지 나눠먹으며 따뜻하게 보내는 커플들을 볼 때면 부러워 죽겠다. 노오란 은행나무 아래서, 빠알간 단풍나무 아래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이 계절을 만끽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혼자 셀카 찍는 내가 불쌍해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이 건강해야, 내가 나를 사랑해야 비로소 다른 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인생은 혼자다“ 따위의 제목을 단 유튜브 영상과 철학 책에서 질리도록 들었다. 스스로를 세뇌하듯 듣고 또 들었더니 진짜 그렇게 믿게 됐다. 세뇌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사람은 혼자 잘 지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엄마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특히 엄마한테 별것도 아닌 걸로 짜증내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진짜 강한 사람이니까. 엄마 말을 듣고도 별 생각이 안 든 걸 보면, 농담할 여유가 생긴 걸 보면 나도 조금씩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내가 웃어야 다른 이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니 천천히, 그러나 얼른 단단한 내가 되자. 사랑도 결혼도 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