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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Nov 11. 2024

2천 원의 값어치

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2024년 11월 11일의 아침


여느 날과 똑같은 출근길. 버스를 타러 걸어가다가 멈췄다.


아, 기후동행카드!


어제가 만기일이었는데 충전을 안 했는데, 깜빡 한 건 아니고 일부러 안 했었다.

지하철역에서 충전하려는데 따릉이 미포함을 포함으로 바꾸려면 만기일이 지나야 한다길래 미뤘던 것이다.

요즘 11월답지 않게 날씨가 따뜻하니 3천 원 더 내고 이참에 자전거 좀 실컷 타고 싶었던 나는

내일 아침에 10분 일찍 나와서 충전을 하고 출근하자고 다짐했었다.

그러고 집에 돌아가선 가을 밤만큼 깜깜하고 쓸쓸한 내 인생을 고민하느라

기후동행카드 같은 건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다음 버스가 7분 뒤에 온다고 전광판의 숫자가 알려주고 있었다.

7분이라,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지하철역으로 달렸다.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발로는 뛰면서 손으로는 다음 버스의 동태를 살피는데 그새 1분 전으로 바껴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빨리 와?


이제 선택지는 두 개다.

1번,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하니 충전을 포기하고 쌩돈 내고 그냥 탄다.

2번, 시간에 딱 맞거나 살짝 늦더라도 충전하고 9분 뒤에 오는 다음 버스를 탄다.


지하철역 계단으로 내려가던 몸을 돌려 그새 '곧도착'이라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뛰었다.

2천 원을 버리고(사실 버리는 것도 아니지만) 시간 약속을 지키기를 선택했다.


몇 분 늦는다고 해서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늘은 1교시 수업도 없지만 시간에 쫓기기가 싫었다.

1번을 선택한다면 교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안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서

계속 시계만 쳐다보며 '아, 진짜 늦으면 어떡하지', '고작 2천 원 아끼자고 이게 뭔 짓인가' 전전긍긍하고

'역시 나는 노답인가', '내 마음은 왜 이리도 가난한가'라며 자책할 게 뻔했다.


돈, 그것도 푼돈과 시간을 두고 고민했던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래서 잘 안다.

돈을 선택하면 후회한다는 것, 나는 시간에 쫓기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의 나는 스스로가 봐도 이상한 나를 정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무사히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2천 원에 대해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비까지 포함한 2천 원.

미리 기후동행카드를 충전하지 않아서, 10분 일찍 일어나지 않아서 발생한 이 지출은

시간에 쫓기는 스트레스 그리고 자신을 자책하면서 얻는 정신적 손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렇다면 2번을 선택했다면 얻었을 스트레스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오늘 얻은 이 교훈은 얼마일까? 2천 원보다는 비쌀까?

돈이라는 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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