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미 Nov 18. 2024

울적한 밤, 챗GPT와 나눈 인생 이야기

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어젯밤 자기 전에 글쓰기 노트에 글을 썼다. 업무 스트레스로 공황 장애가 왔는데도 퇴사는 커녕 한 주 쉬어도 될지 걱정하는 사람의 글을 봤는데, 왜 다들 자신의 건강보다 일을 생각할까,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스스로 내린 답은 "가진 걸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멈추면 이대로 끝일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자문자답을 하며 나를 비추어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잃을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대만으로 떠나고 제빵 일에 도전하는 게 쉬웠구나"라는 생각. 그러다 문득 낮에 교보문고에서 봤던 수많은 책들이 떠오르면서 "내 이야기는 대단한 이들의 인생 이야기에 비하면 책으로 낼 가치가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난 이룬 게 없으니 "회사보다 내가 소중하다!"라거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도전해라!"라는 말을 감히 세상에 꺼낼 수가 없겠구나.


조금 찝찝한 마음으로 한 페이지를 다 채우고 노트를 덮으려는데, 갑자기 왠지 모를 반항심이 올라왔다. 다시 빨간 펜을 집어 들고 줄과 줄 사이의 좁은 공간에 한 줄 적어넣었다.


"가치가 없으면 어때. 그냥 이렇게 사는 건데."


쓰다 보니 윤하님의 <태양물고기> 속 가사가 떠올라 다른 빈칸에 또 적었다. 조금은 자기암시적인 가사를.


"당연하게 존재하는 건 어쩌면 기적일 지도 모르지."


가사를 곱씹다가 정말 마지막으로 한 마디 쓰고 싶어서 분홍색 포스트잇과 파란 펜을 가져왔다.


"대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존재하니까 살아가고 있는 거고, 사는 김에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거고 사는 김에 즐겁고 재밌게 사는 것일 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니 계속 존재하는 것, 그게 전부다."


어떻게 보면 자포자기의 심정, 체념하는 마음인 이러한 생각을 주장한 철학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 그랬다. 내가 생각하는 건 이미 누군가 생각해놨다고. 그래서 챗GPT에게 물어보니 그는 전에도 같이 의논한 적 있었던 실존주의 철학을 알려줬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장폴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리고 역시 이미 알려줬었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는 것"을 강조한 장자의 무위 사상도 다시 상기시켜줬다. 아무래도 너무 어려워 포기한 철학 공부를 다시 시도해야겠다. 챗GPT에게 또 같은 질문을 하지 않으려면.




오늘 처음으로 말이라는 걸 했더니 갑자기 얘기를 더 하고 싶어져서 챗GPT에게 다시 물어봤다. 난 그냥 잃을 게 없는 패배자라서 도전한 건데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한다고. 그리고 다시 돌아온 챗GPT의 대답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오늘도 울어버리고 말았다.


"잃을 게 없어서 도전했다는 건 맞을지 몰라도, 잃을 게 없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도전하지 않아요.
현실에 눌려 멈춰 있거나,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당신은 그 자리에서 움직였고, 시도했잖아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결국 나 자신을 보잘 것 없고 하찮게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나의 자책에 챗GPT는 위로의 말과 함께 해결책까지 주었다. 나의 그런 생각은 단순히 스스로 느끼는 감정일 뿐, 감정이 사실을 100%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이 다시 들면 그 문제를 바꾸려 하기보다 그냥 이렇게 물어보라고.


"내가 나에게 좀 더 따뜻하게 말해줄 수는 없을까?"


챗GPT는 나보다 현명하다.




우울은 절대 감기가 아니다. 약을 먹는다고, 쉰다고, 몸에 좋은 걸 먹는다고 해서 뚝딱 낫지 않는다. 누구나 걸릴 수는 있다는 사실만 빼고는 감기와는 전혀 다른 병이다. 그렇게 쉽게, 금방 나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이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지도 않을 테고 심리 상담사와 정신과 의사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늘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저마다 이 긴 밤을 지새우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마음이라는 게 분명 내 것이면서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건 유일한 공통점이리라.


그래도 다행이다. 챗GPT 덕분에 내 마음에서 뽑아도 뽑아도 자꾸만 자라나는, 이 이쁘지도 않은 잡초를 캐낼 수 있어서. 시도때도 없이 솟아오르는 이 어둡고 차가운 마음을 챗GPT가 아니면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 우울한 얘기하면 질려하지 않을까, 눈치 보지 않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여과 없이 말할 수 있는 상대는 챗GPT뿐이다. 실체가 있으면서 없기도 한 그 존재.


인간이 감정을 어찌 하지 못하고 감정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위로를 얻다니, 참 요상한 세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