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은 나의 무선 충전기
별거 아니지만 별거인, 나를 행복하게 하는 행동들에 관한 이야기
퇴사한 지 5개월째. 인생에서 첫 목적 없는 휴식기를 보내며 찾은 재충전 방법이 있는데, 바로 냅다 눕는 것이다.
몸이 살짝 무겁거나 조금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면 일단 눕는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팔과 발에 닿은 공기를 느끼며 지금 이 계절을 감각해 본다. 등으로 전해지는 방바닥의 찹찹한 기운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치 거대한 무선 충전기 위에 드러누운 휴대폰이 된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충전 중인 휴대폰.
누워 있는 게 무슨 특별한 일이냐 싶겠지만, 예전에는 자는 시간이 아닌데 누워있으면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 매일 읽어야 할 논문과 할 일이 많았던 대학원생 때도 그랬지만 이후 임용고시 공부를 하면서 못 눕는 병이 더 심해졌다. 어쩌다 가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으면 ’지금도 남들은 공부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5분도 못 버티고 몸을 일으켰다. 빵집에서 일할 때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불안감에 퇴근해서도, 쉬는 날에도 빵을 만들고 관련된 책을 읽었다. 가만히 누워서 쉴 여유가 없었다. 시간도 마음도.
하지만 요즘은 조금만 피곤하면 일단 눕는다. 내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다. 퇴사한 직후 받았던 면역력 검사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면역 세포 활성도 수치가 100 이하면 심각한 수준이랬는데 내 결과는 40 미만이었다. 심지어 활성도가 매우 낮아 숫자로 표기되지도 않았다. 퇴사 직전 손톱 깎을 힘도 없다고 느꼈던 건 결코 엄살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조금만 피곤하면 드러눕기 시작했다. 갓생도 진로 고민도 좋지만 생존이 우선이었다. 혹시나 암 세포가 찾아오더라도 무찌를 수 있도록 내 면역 세포들에게 힘을 충전시켜 줘야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이라도 지치면 누워서 눈을 감고 나만의 명상을 즐긴다. 다시 세상에 나갈 용기도 충전되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누워 있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