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글자#02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유튜브가 만들어준 재생목록을 듣다가 오랜만에 가수 윤하님의 <사건의 지평선>을 들었다. 영어로는 ‘Event horizon’인 '사건의 지평선'. 그 대표적인 예로는 블랙홀의 경계면이 있다. 이 경계면의 안쪽은 중력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경계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 그 어떤 물질도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물질인 빛조차도. 그래서 ‘블랙’홀인 것이다.
윤하님이 직접 가사를 쓰셨다던데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하다. 이별이라는 사건을 과학적인 사실에 빗대어 이렇게 문과적으로 표현하다니, 그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창의융합적 인재’가 아닐 수 없다. 뮤직비디오는 처음 봤는데,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제목답게 역시 블랙홀 그림이 나왔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많이 봐서 익숙한 그 블랙홀이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진 건 아마 <인터스텔라> 덕분이었을 거다. 나 역시 <인터스텔라> 덕분에 현생에 치여 한동안 잊고 있던 우주에 대한 사랑을 다시 불피울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걸 왜 보느냐고 하지만(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인터스텔라>는 나의 최애 영화이자 인생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개봉 당시 피켓팅을 뚫고 용산 아이맥스에서 3번 봤었다. 첫 관람은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랑 함께였는데, 영화를 다 보고 밖에 나왔더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던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아직도 겨울만 되면 기억난다.
<인터스텔라>는 집에서도 수차례 봤는데, 세어보진 않았지만 최소 스무 번은 넘게 봤다. 요즘도 종종 보는데 어떤 날은 틀어놓고 소리만 들을 때도 있다. 하도 보고 들어서 주인공들의 대사를 따라할 수 있을 정도다. 이미 수십 번 본 이 영화를 또 보는 날은 주로 ‘나는 왜 살지?’ 하는 현타가 아주 세게 오는 날이다. 이런 날이면 ‘내 인생은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면서 한 손으로는 맥주 캔을 따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인터스텔라> ‘재생하기’를 누르고 있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어느 순간부터 하고 있는 울적한 날의 루틴이다.
지구 온난화로 망해버린 지구와 인류를 구하고자 미지의 세계로 떠난 주인공, 그곳에서 만난 이상한 별 세계, 수십 년이 흘러 다시 만난 딸을 두고 또 다시 알 수 없는 세계로 떠나는 주인공. 쿠퍼와 함께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여행을 다녀오면 어느새 나의 존재가 되게 ‘하찮게’ 느껴지면서 불과 3시간 전까지 무엇 때문에 우울했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세계를 다녀와서일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주인공인 쿠퍼가 내 목숨을 여러 번 살려놓은 셈이니 나에게 <인터스텔라>는 그야말로 ‘진짜 인생 영화’이다. 특유의 웅장한 음악으로 이유 모를 두근거림을 안겨준 한스 짐머도 빼놓을 수 없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재미와는 별개로 <인터스텔라>가 상대성 이론이니 웜홀이니 하는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보니 대충은 알겠지만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때 영화 내용을 이해하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영화 해석 영상과 물리학 영상을 엄청 찾아봤었다. 특히 ‘리뷰엉이’ 채널의 아주 친절하고 쉬운 설명을 들으면서 ‘아, 이래서 그렇구나’라고 깨달을 때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상대성 이론을 방구석에서 영상을 보면서 (아주 쥐꼬리만큼이라도) 이해하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머나먼 우주로 떠나는 쿠퍼 일행을 보면 부럽다. 어둠만 가득한 우주 속을 얇디 얇은 쇠 구조물에 의지해 떠다니는 기분은 어떨까. 지구에 모든 걸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여행을 떠나는 심정은 어떨까. 쿠퍼는 딸을 살리기 위해 마지못해 떠난 여행길이지만, 나라면 신나는 마음으로 기꺼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구에서의 모든 번뇌가 의미 없는, 정말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니까. 물론 그 새 출발이 ‘영원한 끝’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인터스텔라>뿐만 아니라 영화 <그래비티>를 봐서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 너머로 여행을 떠나는 모든 주인공들이 부럽다.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 외에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즐겨 봤다.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주는 <마션>이나 <아마겟돈>, <라이프>, <퍼스트맨>, <패신저스>도 재밌었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월E>도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흥미로웠다. 아,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도 우주 세계의 토르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 외에도 많은 우주 영화를 봤을 것이다. 평소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은 아니면서도 우주가 나오는 영화는 찾아보게 되는데, 이 몸으로는 우주 여행을 떠날 수 없으니 상상으로라도 가보고 싶어서 그런 듯하다. 기술의 발달로 점점 더 진짜 같아지는 영화 속 우주를 보고 있자면 마치 꿈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 우주는 나의 꿈이다.
‘우주 여행 가기’는 어릴 때부터 소중히 간직해온 내 꿈이었다. 지금도 여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더 분발해서 나 같은 사람도 우주선을 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늘 바라고 있다. 초등학생 때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우주를 좋아했던 건 확실하게 기억난다. 특히 다른 행성 이야기가 재밌었는데, 어떤 행성은 바닥이 단단한 땅이 아니라 구름 같은 기체라거나 어떤 행성은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거나 하는 얘기들을 들으면 ‘딴 세계’ 같아서 신기했다. 실제로도 딴 세계이긴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이 지구과학 선생님이셨는데, 내가 우주를 좋아하는 걸 아시고는 과학관 견학 이런 데도 보내주시고 쉬는 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질문하러 가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래서 과학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서 진지하게 알아본 적도 있었다. 그저 순수하게 우주가 좋고 지구과학이 재밌어서. 물론 나의 이 깨알보다도 작은 수학 머리로는 감히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깨닫고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지만 '과학고등학교' 역시 나의 지난 꿈 중 하나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우주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다. 1학년 때는 방학에 강원도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로 캠프를 가기도 했었고, 심지어 지구과학 올림피아드(!)에도 나갔었다. 지구과학이 너무 재밌어서 EBS 수능특강 ‘지구과학 I, II’를 사서 혼자 공부했었는데 마침 올림피아드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는 나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수학을 못 해도 과학을 잘하면 이과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대회장에서 문제지를 받아들고서 깨달았다. ‘아,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구나’라는 걸. 만약 그때 내가 도시에 살아서, 가정형편이 조금 더 좋아서 과외나 학원을 다녔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뭐, 그렇다기엔 수학 머리가 원체 없어서 문과를 간 사람이기에 할 말은 없다. 고 2 때 선택과목으로 과학 수업을 들을 수 있긴 했지만 지구과학 수업은 열리지 않아서 화학 수업으로 과학에 대한 욕구를 채웠고, 지리 수업을 들으면서 우주 대신 지구를 탐험했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반짝이는 별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했고, 방학 내내 우주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이 촌구석을 벗어나 드넓은 세계로 떠날 미래를 꿈꿨다. 그때부터 나는 우주의 힘을 빌려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고단함을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도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면 우주로 도망치곤 한다. 갓 퇴사했던 시점인 몇 달 전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속으로 우주 여행을 떠났었다. 고등학교의 어느 방학 때 읽었지만 워낙 오래 전이기도 하고 당시의 나에겐 너무나도 어려워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책이다. 우주계에서 바이블로 통하는 이 책을 완독하는 건 나에겐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인생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한동안 물리학과 양자역학 동영상을 보던 내 알고리즘에 잊고 있었던 《코스모스》 영상이 떴던 것이다. 백수가 되었으니 시간도 많겠다 미뤄뒀던 숙제를 하자 싶어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과학을 손에서 아예 놓지는 않았던 덕분에, 유튜브 선생님들의 친절한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확실히고등학생 시절보다는 이해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는 미지로 남아 있던 우주의 면모들이 지금은 제임스웹의 눈부신 활약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은 인류의 경이로운 발전을 새삼 깨닫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읽고 있으면 ‘다른 세계’로 떠나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화성이든 안드로메다든 ‘지금 이곳’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 34살이니 백수니 하는 그 어떤 수식어도 의미 없는 지구 밖 어딘가. 생각해 보면 이때 《코스모스》를 읽고 싶었던 건 잠시라도 엉망진창인나 자신을 잊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번에도 미션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른이 된 나 역시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채 책을 덮고 말았다. 분명 재밌고 읽을수록 빠져드는 책이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머리가 아파오는 건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우주 좋아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이건 완독해야 해!”라며 스스로를 꾸짖기도 하면서 꾸역꾸역 읽어나갔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우주인이 되려면 아직 수련이 더 필요하다.
또 완독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있던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심채경 교수님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던 중 《코스모스》 얘기가 나왔다. 나보다 훨씬 뛰어나시고 ‘천문학자’이신 심채경 교수님도 코스모스를 완독하지 못하셨다는 내용이었다. ‘똑똑하신 분도 이런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였구나!’ 교수님의 솔직한 발언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완독하지 못했다는 찝찝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꼭 지금 다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몇 살 더 먹으면 또 눈에 들어오는 게 있겠지. 설령 죽을 때까지 다 못 읽어도 어쩔 수 없고. 무엇보다 이 책을 다 읽어야 우주를 좋아할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비록 지금은 고등학교 지구과학도 다 잊어버렸고 여전히 《코스모스》를 완독하지도 못했지만, 오늘도 나는 꿈꾼다. 모든 걸 내려놓고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로 떠나는 날을, 나사에 취직하진 못해도 미국 휴스턴으로 날아가 나사 센터를 구경하는 날을, 나의 이 머리로 우주의 법칙을 일부나마 더 이해할 수 있는 날을.
그리고 소망한다. 우주로 도망치지 않아도 지구에서의 삶을 오롯이 견뎌낼 수 있는 내가,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 대신 지구에 남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가 될 수 있기를.
+ 지난 꿈을 떠올리며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신 가수 윤하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