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도 마음도 깨끗하게
별거 아니지만 별거인, 나를 행복하게 하는 행동들에 관한 이야기
나 홀로 자취 14년 차. 우리집엔 청소기가 없다. 대신 최소 이틀에 한 번은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화장실 수건걸이에는 수건 대신 걸레가 걸려있다. 헌 수건을 잘라 만든 걸레. 걸레를 걷어서 세면대에서 찬물 샤워를 시켜주고 물기를 적당히 짜준다. 너무 많이 짜면 다시 또 물 묻히러 와야 하니 부러 촉촉하게 남겨둔다. 수건 개듯 걸레를 착착 접어서 안방의 구석으로 달려가 쪼그려 앉아 닦기 시작한다. 어디서 보기론 이 자세가 무릎 관절에 별로 안 좋다던데 어쩔 수 없다. 기다란 막대 걸레도 있긴 하지만 그걸로는 바닥 닦는 맛이 안 난다. 자고로 걸레질은 구석구석 먼지가 닦여가는 걸 바로 앞에서 관람하는 재미가 있어야지. 걸레를 들지 않은 손과 맨발로 찬기가 느껴지는 바닥을 느끼는 것도 좋다.
세상 불쌍한 자세로 걸레질을 하다 보면 떠오르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엄마. 툭하면 "바닥에 뭐가 자근자근 밟힌다"고 말하며 장녀인 내게 청소 조기 교육을 시켰던 우리 엄마. 엄마 말에 세뇌가 된 건지 발바닥에 뭐가 조금이라도 이물감이 느껴지면 바로 걸레를 가지러 간다. 걸레질을 할 때마다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정작 지금은 부모님 집에 가면 쌓여있는 '자근자근'들을 내가 청소하지만.
내가 매일 걸레질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 우리 고슴도치 꾸꾸와 까까이다. 낙성대 원룸에서 자취하던 시절, 우리 고슴이들은 온 방을 돌아다니는 자유 도치들이었다. 평생을 상자만 한 케이지 안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 방목 도치로 키웠다. 고슴이들에게 자유를 준 대가로 나는 숙제를 얻었다. 매일 자기 전에 방바닥 닦기. 700g 밖에 안 되는 작은 몸으로 우리집의 가장 낮은 곳을 활보하고 다니는 고슴이들에게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올도 허락할 수 없었다. 내가 자는 동안 뭐 잘못 주워 먹고 아프면 큰일이니까. 회식하고 돌아와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걸레를 빠는 나를 보며 우리 고슴이들은 얼마나 웃었을까. 이제 이 집에 나 말고는 그 어떤 생명의 움직임도 없지만 그래도 매일 바닥을 닦는다. 간밤에 우리 고슴이들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때로는 '맨발에 뭐가 밟히는 느낌'을 못 참는 내가, 마치 강박처럼 매일 걸레질을 하는 내가 이상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빵집에서 일할 때도 천근만근 무거운 두 다리를 이끌고 방바닥을 닦아야 마음이 편했으니까. 그래서 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그렇게 하지 말아 보라고 하셔서 진짜 안 해봤었다. 자꾸 발에 뭐가 밟혀서 찝찝하지만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아봤다. '해야 한다' 한 가지가 줄어드니 몸도 정신도 덜 피곤했다. 허나 4일째 되던 날 아침, 눈 뜨자마자 다시 걸레를 빨았다.
'걸레 금지' 기간을 겪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내게 걸레로 바닥 닦는 건 단순히 바닥만 닦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청소기 두고, 막대 걸레 두고 굳이 손 걸레질 하는 건 확실히 귀찮고 번거롭고 힘들다. 요즘처럼 더운 날은 걸레질이 운동 못지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땀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삶의 지저분한 흔적들을 닦아내다 보면 내 마음의 어두운 기운도 먼지와 함께 쓱싹 닦여나간 것처럼 홀가분해진다. 우울할 땐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던데 걸레질이야말로 아주 효과적인 치료제인 것 같다. 5분만 투자하면 상쾌함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으니까.
엄마도 고슴이들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힘과 땀을 들여 바닥을 닦는 것', 오늘도 별거 아니지만 별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