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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개기

귀찮지만 나와 가족을 위해

by 끼미 Sep 24. 2024

별거 아니지만 별거인, 나를 행복하게 하는 행동들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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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빨래를 갰다. 어제 저녁에 빨아 하루 동안 말린, 지난 일주일의 허물들이다. 건조대를 쳐다보면서 잠시 '내일 할까?' 하고 고민했지만 결국 그냥 했다. 지금 하나 내일 하나 어차피 내가 해야 한다.


요리든 청소든 집안일하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유독 빨래는 좀 귀찮다. 아니, 빨래 너는 건 괜찮은데 다 마른 빨래를 개는 게 귀찮다. 제 자리에 앉아 빨래를 개는 건 좋지만, 다 갠 빨래를 각자의 자리로 돌려놓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다. 옷장에 갔다가 서랍을 열었다가 화장실도 들어갔다가.. 온 집안을 산책하는 수준이다. 물론 끽해야 3분이면 끝나는 산책이지만.


그래도 빨래를 개는 행위 자체는 즐겁다. 같은 모양으로 접힌 알록달록한 수건 탑이 높아질 때마다 쾌감이 느껴지고(가끔 쓰러지면 짜증 나기도 하지만), 화투 놀이 하는 것 마냥 양말의 짝을 찾아주는 것도 재밌다. 계절감이 느껴지는 옷들을 개면서 이 옷을 입고 어디에 갔었는지, 누구를 만났었는지 추억 여행도 할 수 있다.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져 있던 빨래들을 종류별로 착착 모아두고 나면 상당히 뿌듯하다. 정리병 환자가 일주일에 한 번 느낄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즐거움이랄까.


혼자 빨래를 개다 보면 또 엄마 생각이 난다. 집안일이라고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우리집 두 남자들 덕분에 예나 지금이나 빨래 개는 건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가끔 내가 부모님 집에 가면 엄마의 동료가 되어 주는데, 농사꾼 3명의 엄청난 빨랫감과 남자들의 행태에 짜증도 나지만 빨래를 개며 엄마랑 도란도란 얘기하는 그 시간이 좋다. 두 남자는 절대 끼어들 수 없는(그럴 생각도 없겠지만) 여자 둘만의 시간. 너희 동생은 왜 양말을 자꾸 뒤집어 벗어놓냐, 아빠가 이 셔츠 찾아달라고 짜증 냈다 등등 대부분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을 향한 말들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 그런 이야기야말로 엄마니까, 딸이니까 할 수 있는 아주 사적이고 특별한 이야기니까.


그래도 앞으로는 내가 없어도 엄마가 외롭지 않도록 두 남자 중 한 명이라도 엄마의 빨래 개기에 동참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에게도 언젠가는 나의 또 다른 가족을 위해 빨래를 개고 집안 산책을 하는 날이 오기를, 그 시간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생기기를 바래본다. 그런 날이 오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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