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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Aug 03. 2024

이렇게 사는 삶

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맨날 이렇게 주야랑 맛있는거 무러 다니면서 살면 좋겠다."


나와 엄마, 단 둘이 동네 양식집에서 점심을 사 먹고 나오는 길에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그냥 한 말이었겠지만 엄마를 먼저 보낸 뒤 혼자 스벅에 들어오고 나서도 엄마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 짧은 말에서 엄마의 행복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단 오늘 점심만이 아니다. 요즘 엄마는 행복해 보인다. 아빠가 다시 가정적인 사람으로 돌아온 것, 떨어져 살던 딸이 2주째 같이 지내고 있다는 것이 큰 이유이리라. 


나 역시 행복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모님 집에 내려와 있는 게 이렇게 마음 편한 건 실로 오랜만이다. 아빠와 엄마, 아빠와 나 사이가 회복되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과 편안함을 다시 느끼게 됐다. 여전히 짜증나고 답답한 구석이 있어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간다. 예전처럼 따박따박 따져들고 버럭 화내지 않는다. 안방 침대 냄새 때문에 얼떨결에 엄마아빠와 함께 거실에서 24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2주가 되도록 전혀 불편하지 않다. 아빠와 한 공간에 있는 걸 최대한 피했던 몇 달 전의 내가 아니다. 마음이 편하니 입에서 나오는 말도 이뻐졌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다.


내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도 스스로 만족스럽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고 글을 쓰고 밥을 먹고, 또 글을 쓰고 깜둥이와 산책하며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하고, 티비 보며 운동하고 나서 시원하게 샤워하고 또 글 하나를 더 쓰고 일기 쓰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돈 한 푼 못 버는 백수지만 나름대로 바쁘게, 생산적으로 살고 있다.


요즘 잠도 잘 잔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 혼자 조용히 잘 때보다 딱딱한 바닥 위에서 시끄러운 아빠의 잠꼬대와 엄마의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요즘 더 푹 잔다. 아침에 깨면 몸과 정신이 개운하다. 이렇게 새벽에 덜 깨면서 길게 푹 자는 게 몇 년만인지 모르겠다. 일을 안 하는 것도 있겠지만 잠을 잘 자니 저녁까지도 안 피곤하고 머리가 맑다. 모처럼 컨디션이 좋다.


가끔 머리가 지끈거릴 때도 있다. 글을 쓰다 막히면 그렇다. 그래도 괜찮다. 밖에 나가 뜨거운 공기라도 쐬고 밤 하늘의 별을 보며 멍 때리면 된다. 그렇게 자연의 기운을 충전해 노트북 앞에 앉으면 다시 글이 써진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내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무슨 글이든 하루에 글 한 편은 완성된다. 그 글에 몇 개의 '좋아요'가 눌리든, 댓글이 달리든 그렇지 않든 나는 내 손끝에서 만들어진 내 글이 마음에 든다. 글을 쓰겠다 마음 먹고 진짜 실천하고 있는, 글 쓰는 내 모습도 좋다.




글을 쓰며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삶. 상당히 흡족한 삶이다. 다만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사실에 이따금 불안해진다. 아니, 슬퍼진다. 나도 맨날 이렇게 엄마아빠랑, 동생이랑, 우리 깜둥이랑 살면 좋겠다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어쨌든 일을 해야 하고 곧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 또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언제까지고 지금의 여유로운 백수 생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길 수 없다. 평생 엄마아빠에게 얻어먹으며 살 수 없고 90대 할머니가 된 엄마에게까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의 이 편안함도 길어지면 불편함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이미 경험해봐서 너무 잘 안다.


내 일을 하면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은 불가능한 걸까? 

내가 여기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로 돈을 벌며 가족과 함께 할 방법은 없을까? 

몇 달은 돈을 벌고 또 몇 달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삶'을 계속 살 수는 없을까?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오늘도 철없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랑 묵은 '맛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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