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소설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1999년 -5- (brunch.co.kr)
“누~구~세?”
숨이 “턱”하고 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내 앞에 서있는 심판이 바로 광수형이었기 때문이었다.
190센티미터 120킬로그램이라는 거구의 광수형은 80킬로그램 정도로 말 그대로 홀쭉해져 있었다.
턱수염까지 없었다면 자신을 광수라고 밝혀도 믿지 못할 정도로 체중이 빠져있었다.
“형이 어떻게 여기에.”
광수형은 “일단 잘 던지고 이따 다시 이야기하자.”며 나에게 공을 건네고 자신의 자리인 포수 뒤편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가까스로 경기를 마치고 팀원들과 헤어진 후 광수형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형은 한쪽 구석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형에게 다가가는 10초의 시간 동안 도대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무의식적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온 “형, 잘 지냈어?”라는 인사말이 적절치 못한 인사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무안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형도 여전히 야구를 하고 있었네.”라는 말과 함께 겸언쩍은 웃음을 지었다.
광수형은 새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많은 부채로 신용불량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여러 명으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 어떤 회사에도 취직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돈벌이가 비교적 나은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도 해봤지만 허리 통증과 만성피로로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찾은 일자리가 사회인 야구 심판이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열리는 사회인 야구는 한 경기장에서 하루에 네 경기에서 다섯 경기가 열리게 되고, 심판을 보게 되면 경기당 오만 원의 심판비가 지급되는데,
광수형은 이틀간 심판을 보면서 받은 수고비 삼십만 원에서 사십만 원으로 일주일을 살고 있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내고 있고, 버텨내고 있다고 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돈 이야기는 아예 꺼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언제 소주 한 잔 하자는 말로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 후로도 나는 거의 매주 야구 경기를 위해 야구장에 나갔지만 더 이상 광수형을 만날 수가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야구경기를 주관하는 리그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플레이오프 진출에 따른 경기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리그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게시판에 눈에 띄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든 부고였다.
‘심판 윤광수 사망. 장례식장 000 병원’ 발인 일자를 확인하니 한 달 전의 부고였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리그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7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