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C기자와의 전화 통화가 생각났다. <계속>
휴대폰을 꺼내 들고 낮에 썼던 소회의 글을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 페이스북 계정에는 수많은 기자들에게 나의 일신상의 변화를 알리고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페이스북은 기자들과 소통하는 데 제법 유용한 창구가 되어 주는 것 외에도 홍보에 있어서도 병원의 입장을 알리는 데도 효과적인 수단이 됐었다.
전 세계를 혼돈 속으로 빠뜨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일하는 병원에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발생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져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을 피부로 느낀 경험이기도 했다.
지인으로부터 “너네 코로나 환자 나왔어?”라는 황당한 전화를 받은 지 채 십 분도 되지 않아 콜센터를 비롯해 민원을 응대하는 병원의 대부분의 전화가 이 문의로 전화가 불이 났고, 직원들 휴대폰으로도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사실을 확인한 결과, 인근 지역의 구급대가 환자를 태우고 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는데 때마침 응급실은 바이러스 감염 의심환자가 방문해 소독을 위해 두 시간 여 동안 폐쇄된 상태였다.
이를 본 구급대원 중 한 명이 감염 환자가 있어 응급실에 폐쇄된 것으로 오해했고, 이를 카카오톡으로 지인들한테 전달하면서 가짜뉴스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 가짜뉴스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져나갔 듯 걷잡을 수 없이 세상에 퍼져 나갔다.
코로나19의 창궐 초기였던 만큼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만큼이나 언론도 앞 다퉈 취재 및 보도의 열을 올릴 때였다.
빠른 시간 안에 백 명에 가까운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우선 페이스북에 가짜뉴스임을 알리는 내용을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내용을 본 몇몇의 기자들한테서 안부를 물을 겸해서 전화가 왔을 뿐 이 내용을 보도하거나 오보한 언론은 한 곳도 없었다.
페이스북의 놀라운 영향력에 대해 피부로 느낀 경험이었다.
택시를 잡아 탄지 30분이 지났을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십여 년 전 병원 내에서 환자를 위한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알게 돼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시립 예술단에서 근무하는 형의 전화였다.
“야. 무슨 일이야?”
“잉? 아니 오랜만에 전화해서는 다짜고짜 무슨 일이냐니?”
“페북 보고 깜짝 놀라서 전화한 거야 인마. 너 병원 그만둬?”
불과 몇 분 전에 올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던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취했나 보다.
“아... 그만두는 거 아니고, 내가 거기에다 CS팀 발령이라고 썼잖아. 제대로 안 봤구먼.”
“아. 그러네. 일단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너만큼 홍보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황당한 인사를 내고 그런 다냐?”
“뭐, 다 이유가 있겠지.”
‘뚜 뚜 뚜’하는 신호음이 들렸다. 또 다른 전화가 왔다.
다시 전화한다는 말로 형과의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받으려 하니 신호음이 끊기며 ‘부재중 전화’라는 표시가 생겼다.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피곤함도 밀려왔기 때문이다.
때마침 얼마 남지 않았던 휴대폰 배터리도 음악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집에 도착해 꺼진 핸드폰을 충전기 잭에 연결했다.
그러나 전원은 켜지 않았다.
술, 사람들은 백해무익하다고 말하지만 지금 당장 나를 짓누르는 갖가지 생각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게 해주는 묘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알람이 울기 전에 잠에서 깨어 새로울 게 없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벌써 집을 나섰어야 할 시간이지만 내 몸은 여전히 소파에 머물렀다.
난생처음 느낀 출근하기 싫은 아침이었다.
출근해 사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신문사 사진부장으로 일하다 얼마 전 퇴직한 D부장이었다.
D부장은 수십 년 간의 사진 기자를 은퇴하고 근사한 맞춤양복점을 차렸다.
D부장은 시끌벅적하고 치열한 취재 경쟁이 펼쳐지는 취재 현장에서도 언제나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는 기자로 유명했다.
양복점이라는 멋진 제2의 인생을 펼치기 위해 그동안 준비했을 그의 노력과 계획 그리고 실행에 옮긴 그가 대단했고 부러웠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D부장은 어젯밤에 올린 페이스북의 글을 보고 걱정이 돼 전화를 한 것이다.
D부장은 다른 맘 갖지 말라는 당부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울렸다.
모 신문사 부국장의 전화였다.
전화 통화 내용은 D부장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이어 모 방송국 취재 부장의 전화가 왔다.
그렇게 두 시간 여 동안 각 언론사의 기자들과 피디, 작가 등 어림잡아도 스무 명의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걱정해 주는 이들 덕분에 마음에 훈풍이 불었다.
그것도 잠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혹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어?”
“응, 어젯밤에 두루두루 그동안 고마웠던 기자들에게 전하는 글을 올렸지. 근데 왜?”
“어떤 직원한테 들었는데, 형이 페이스북에 이번 인사의 불합리와 항명의 글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대.”
“뭐? 푸하하하. 나 참 진짜 웃긴다.”
'내가 저 인간들 가십거리를 만들어준 꼴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허망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내가 한 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 축에 드는 쌍둥이 건물이 자욱한 미세 먼지 사이로 뿌옇게 보였고, 정면에는 공원이 보였다.
이 공원은 백 미터 높이의 작은 동산으로 4월이 되면 도심 속 벚꽃 섬으로 변해 마치 무릉도원이 생각나게 하는 명소로 변한다.
지금이 2월 말이니 한 달 하고 보름만 지나면 벚꽃 섬 벚꽃놀이를 즐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아마도 즐기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한 모금 깊게 빨고 큰 한숨을 내쉬듯 연기를 내뱉었다.
담배연기는 차가운 하늘로 날아가며 이내 사라졌다.
휴대폰을 켜고 글을 삭제했다.
매일매일 매시간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고 퇴근해 차의 시동을 켜려는 순간 카톡이 들어왔다.
병원 동료가 인사 명령서를 캡처해 보낸 것이다.
발령사항 홍보팀 000 팀장 면. CS팀 사원
홍보팀 000 사원 명. 홍보팀 파트장
공식적으로 발표가 된 것이다.
부서원이었던 직원이 파트장으로 승진이 되면서 부서장인 된 인사였다.
속도 없이 신임 파트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트장님, 잘 됐어. 축하해요."
그녀는 "진심으로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라고 답을 했다.
'진심으로 축하를?'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3월 1일. 새로운 부서로 출근을 앞둔 전날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락커를 여는 순간 휴대폰 벨이 울렸다.
내가 일하게 된 CS팀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박 00 선생님의 전화였다.
CS팀은 홍보팀과 같은 기획조정실 산하 부서여서 종종 회식 자리를 통해 알고 지낸 사이였다.
“팀장님, 나여~. 내가 며칠 전에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도 이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어서 전화를 지금 했어. 미안해.”
'팀장님'이란 호칭이 낯설게 들렸다.
“미안하긴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전화를 한 거였지만 박 선생은 삼십 분 넘게 자신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와 같이 CS팀에 발령받은 사람이 전 원무팀장으로 10년 전 박 선생이 CS팀에 오기 전 원무팀에 근무할 당시 힘들게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괴로웠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쓴웃음이 나왔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열어 명상음악을 플레이했다.
계단을 내려와 집 근처 천변을 걷기 시작했다.
새벽 5시니까 한 시간은 족히 걸을 수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나선 새벽 걷기였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뛰기 시작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다.
오만가지 생각은 단 1분 만에 사라져 버렸다.
새벽 달리기의 장점을 단 1분 만에 깨닫는 순간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