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없었다

말에 갇힌 신

by 골든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문장은 신이 존재했다는 증거처럼 반복되었지만,

나는 이 문장이 신을 가장 먼저 오해하게 만든 문장이라 생각한다.


성서원본

신은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은 모든 것 안에 있었다.

바람의 흐름 속에, 별의 궤도 속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각도와

심장이 뛰는 리듬 안에 있었다.


그래서 신은 차라리 없다고 해야 이해가 쉽다.

어디 한 군데 있는 게 아니니까.

어느 경전에도, 어느 교리에도 다 담기지 않으니까.

신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모든 것이었고,

우주가 만들어진 이치 그 자체였다.

태초에

그런데 사람들은,

신을 '이해하기 쉬운 존재'로 만들기 위해

언어로, 개념으로, 구조로 가두려 했다.

종교인들은 수많은 이론을 세웠지만,

그중 대부분은 검증되기도 전에 진리가 되었고,

검증 못한 부분은 이기적인 독단으로 해석하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봉해버렸다.


천동설이 진리였던 시절,

그들은 신의 뜻이라며 이기적으로 중심을 인간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의 질서가 아니라

종교인들의 자만이고 야만이었다.


한 예로 그들은 신을 자기들이 이해하는 말로 가두려고 하다가

결국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스스로 범죄자가 되었지만 부끄러움이 없어 보였다.

나는 오히려,

신을 말하지 않을 때, 더 가까이 느낀다.

모든 것이 스스로 그러하듯 존재하는 순간들,

이해보다 느껴지는 진리들.


신은 누군가의 언어가 아니고,

신은 이해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아닐까.

신은 우리 바깥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이 우주를 이루는 이치의 다른 이름 아닐까.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신은 없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 안에 있고 언어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신을 설명하기보다,

신이 만든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

더 진짜 신을 깊이 이해하는 일 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신을 설명하려는 대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존재를 생각해보곤 한다.

말을 줄이고, 관념을 지우고, 언어에서 물러나

그저 존재하는 것들 앞에 조용히 서본다.

신의 이름으로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너무나 이기적인 가증스러운 자를 바라보며,


그러면, 어느 순간

신은 다시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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