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글
산은 그렇게 친구네 거실 창 너머로 나랑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다.
나에겐 오랜 친구 두 사람이 있다. 그중에 한 명인 부산 사는 친구는 몇 년 전 부터 본인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했다. 첨엔 그냥 인사치레려니 건성으로 듣고 넘겼는데, 진심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낸다는 게 쉽지 않아서 유야무야 미루다가 지난겨울 만남에서 연휴 때 가는거로 덜컥 약속하고 말았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또 한 친구랑 두 시골쥐는 부산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강풍까지 동반해서 정신없게 했다.
터미널에 마중 나온 친구 부부는 따뜻하기 그지없다. 뭐로 대접하고 구경시킬지에 고심하는 그 마음 씀씀이가 배려가 잔잔히 감동으로 와닿는다.
바람은 우산을 젖혔다가 휘어지게 하더니 사정없이 뒤로 어! 어어~하고 밀다가 또 예고 없이 와다다다 앞으로 달리기를 시킨다. 세 친구는 켁켁거리면서도 종달새 마냥 재잘거리며 희희낙락했다. 헉헉대던 내 지친 족쇄가 풀린다. 그 강풍에 내가 해운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저녁 늦게 친구네 집에 들어갔다. 불을 켠 거실엔 가구들과 화초, 살림살이 등이 일렬로 정리정돈이 되있어 깔끔 그 자체였다. 시골쥐 둘은 그 깔끔함에 턱 빠지게 감탄사만 연발했다.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고 셋은 나란히 누웠다. 그렇게 칠십이 다 되도록 오랜 세월 친구로 지내면서 셋이 한 번도 같이 자본 적이 없었던 터라 감개무량했다.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다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깐씩 낯선 잠자리에 잠을 뒤척이다 생뚱맞게 드는 생각은, 친구네의 깨끗함에 엔간히 놀랐는지, 우리 집엔 치울 게 너무 많다고 자다 말고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운 경주집을 생각하니 치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난 아직 겨울잠을 잔다고 생각할래. 청소는 봄에 겨울잠을 깬 다음에 하지 뭐.'
다시 편안해지면서 잠을 청했다. 날이 희붐하게 밝아올 때 잠에서 깬 나는 거실 창 너머로 손 닿을 듯 가까운 산을 마주했다. 나 사는 곳도 산이 지척에 있건만 이렇게 팔베개 베어주며, 숨소리들리는 듯한 푸근한 산을 도심에서 만난게 경이로웠다. 밤새 서로 푸푸 내뿜는 호흡이랑 코골이가 고를 때, 창밖엔 까만 밤이 들여다보고 그 산엔 청설모가, 멧돼지가, 고라니가, 산새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지절거리다 잠을 엮어가고,
그 뒤로 강으로 이어지는 바다가 출렁이고, 그 너머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이 세월 속으로 달려갈 때,
내 이불속엔 방귀들이 보롱 보로롱 거리며 낮에 먹은 특식 얘기를 엮어가던...
그 밤.
그렇게 그 산은 내옆에서 밤새 나를 안고 누워 있었다.
2025.3.7
동방여자.슈르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