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글
"어이~~초백이~~"
"신 초백이 왔냐"
요즘도 내일모레면 칠십이 다 된 막내 삼촌은 환갑 진갑 다 지난 나만 보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나를 초백이라 부르며 너스레를 떤다. '초백이' 내 별명이다. (초백이란 대나무로 엮어 만든 길쭉하게 생긴 옛날 도시락이다) 어릴 때부터 대소가에서 유일하게 나한테만 붙여진 별명으로, 지금까지 삼촌이나 오촌 아재들이 대를 이어 꾸준히 부르면서 구전으로 줄기차게 내려온 것이다. 역사가 제법 깊다.
어릴 땐 왜 내가 초백이로 불려 지는지 몰랐다. 영문도 모른 체 불렸지만 불릴 때마다 뭔지는 모르지만, 놀림을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조그만 내 가슴속은 화롯불이라도 피워진 듯 화닥거렸다. 옆에 있던 엄마는 장난인 척 하면서 짐짓 속상한 진심을 담아서 아재들에게 팔을 짊어지고 때리는 시늉을 해댔다. 하지 말라고... 유달리 내 별명을 잘 부르는 싱겁이 오촌 아재는 나만 보면 "초백이" 서울 구경시켜 주겠다며 내 양쪽 귀를 잡고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그러면 난 서울이고 나발이고 귀도 아프고 눈도 쪽 찢어질 듯이 아파서 울먹거렸다.
그놈의 초백이 별명으로 인해 나의 유년은 하루도 어김없이 성한 날이 없는 무수한 수난 시대를 겪어내야만 했다. 나중에 듣게 된 별명의 유래는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보니 너무도 못 생긴 게 꼭 볼품없는 곰배(고무래) 같더란다. 그래도 그렇지... 삼칠일이 지난 뒤 대소가 아지매들이 새 사람인 나를 들여다보러 왔는데, 엄만 거기다 대고 이렇게 얘기했더란다.
"아무것도 볼게 없심더. 귀에 자루만 하나 꽂으면 곰뱁 니더"라고. 그 이야기는 입 촉 바른 큰집 큰 아지매를 통해 순식간에 온 대소가에 퍼졌다. 그 후 장난이 심한 아재들이 나를 보곤 "에헤...곰배는 무슨! 완전 초백이 구만." 그렇게 난 초백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난 초백이란 별명에 조금씩 무디어지고 있었다. 부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잊어버릴 만하면 가끔 싱겁이 아재가 우리 초백이가 요새 많이 예뻐졌다고 하면서 놀리듯이 그럴 때면 속상해서 뾰루퉁하게 삐졌다. 그러면 아재는 또 초백이가 이뻐서 그랬다고 달래주었다. 그럴 땐 진심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내가 예쁜 줄 알았고, 그렇게 조금 더 자라면 그 지긋지긋한 별명과 놀림에서 해방되리라 믿었다. 그때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 그 시절엔 여름만 되면 환경과 위생이 불결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헌데를 앓았다. 처음엔 아주 작은 뾰루지로 미약하게 시작하는데, 시작했다하면 이것이 아주 잘 번졌다. 종기가 생기기 시작하면 거기에 바르는 약이 있는데, 그 약 색깔이 꼭 잉크처럼 보여서 우리는 잉크약이라고 불렀다. 여자애들은 머리에 종기가 나면 제일 난처했다. 남자애들처럼 머리를 빡빡 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손 쓰는 방법은 종기 난 부분의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잘라내고 약을 바른 다음 나머지 머리카락으로 덮어 가리는 방법뿐이었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헌데가 창궐하여 온 동네 아이들은 헌데를 앓고 있었다. 아이들의 바르는 잉크약의 부위는 점점 더 확장되어 가고, 잉크약으로 인해 아이들은 얼굴과 온몸이 알록달록해져서 새끼 표범이 되어갔다. 그걸 피해 가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고, 그렇게 여름이 되면서 집집마다 새끼 표범 몇 마리씩 기르게 되었다. 가만 보니 옆집에 사는 한 살 많은 종고모의 머리통의 땜방도 더 이상은 머리카락으로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나 역시도 그 수순을 밟아 갈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다.
그날 오후.
온 동네를 허대며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종고모네 집 앞으로 지나가다 보니 종고모가 동생들이랑 마당에서 펄떡거리며 뛰놀고 있었다. 그런데 종고모 모습이 오전보다 낯설었다. 머리카락이 온데 간 데 없어졌다. 그 사이 머리를 다 밀어 버린 것이었다. 까까머리로 새 단장을 한 종고모의 모습은 깍은 밤톨처럼 예뻐 보였다. 그 이쁜 모습을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든 생각이 나도 머리를 깎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종고모가 저 정도로 예쁜데, 아재들한테 이쁘다고 칭찬받는 나는 두말할 것이 뭐 있겠나 싶었다. 한 달음에 집으로 달려 들어가 평생 처음으로 내가 먼저 그 무서운 아버지를 애타게 찾는 전무후무한 일이 생겼다.
"아부지요. 나도 머리 좀 깎아 주소."
"야 가 뭐라카노. 안된다."
"아부지요!"
"허 참! 안된다 카이. 쯧!"
"아부지요오..."
난 안된다는 아버지를 한사코 졸졸 따라다니며 졸라댔다.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아버지가 학을 떼며 항복을 하시고, 나를 사랑채 쇠죽 쑤는 아궁이로 데리고 가셔서 머리를 앞으로 수그리게 하셨다. 드디어 삭발이 거행됐다.
"사각 사각 사각..." 머리 깎이는 소리는 더없이 경쾌하여 나의 가슴을 부풀게 했다.
기계가 더러더러 헌데를 스칠 때면 따가워서 눈물이 찔끔 났지만, 아버지 한테 들킬까봐 꾸욱 눌러 참았다. 드디어 장엄한 삭발식이 끝났다. 아버지가 솔로 머리통을 채 다 털기도 전에 거울을 보려고 부리나케 사랑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거울 앞에 섰다.
"???..."
'이게...아닌데...'
거울 속엔 진짜 못생긴 초백이 하나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쓰러질 듯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재가 예쁘다고 한 말이 거짓말이란 것과 종고모가 나 보다 더 예쁘다는 비참한 현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부지 말을 들을걸...'
회개로 거듭날 판이었다.
땅을 치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는 가혹한 현실 앞에 아홉 살짜리 아이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아 절망 속에 숨죽여 울었다.
며칠 동안 기가 죽어서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카락이 얼마나 자랐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런 나를 두고 자비심이라곤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는 막내 삼촌과 작은오빠는 나를 숫제 따라다니면서 초백이라 놀려댔다. 그때 초백이란 별명에 쐐기를 박았다. 겨우 자신을 추슬려 갈 무렵, 내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어린 동생이 밖으로 놀러 나가자고 졸라댔다. 그사이 동생은 온 전신에 잉크약이 더 짙어져서 완전한 표범으로 거듭나 있었다. 석양이 질 무렵 동생의 손을 잡고 더위도 식힐 겸, 집 앞의 못 둑 위에 서 있는 수양 버드나무 아래로 나갔다. 동생이랑 같이 버드나무에 기대어 힘없이 서 있었다. 한줄기 엷은 바람에 흔들리는 수양버들의 늘어진 가지는 물에 닿을 듯 말 듯 출렁거렸다. 그 모양이 꼭 풍성한 삼단 머리채 같았다. 갑자기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그냥 눈물이 났다. 그동안 꾹꾹 눌러 두었던 것이 뜨거운 눈물로 쏟아져 흘러내렸다. 땟국 물 흐르는 팔뚝으로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는 나를 보고, 동생도 그 맑은 눈에 눈물이 그렁하여 나를 가만가만 토닥였다.
동생의 토닥거림이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 못 한 그간의 아픔과 서러움을 위로해 주는 듯이 느껴져서 난 억머구리같이 목 놓아 울었다.
그해 여름.
석양이 온통 붉게 물든 못 둑 수양버들 아래서 새끼 표범 한 마리와 머리 깎은 아홉 살짜리 초백이 하나가 울며 그렇게 자라나고 있었다.
"초백아 뭐하고 있노. 빨리 많이 묵어라."
막내 삼촌은 대소가 모임에서 토종닭을 앞에 두고 혹시 내가 많이 못 먹을까 봐 빨리 먹으라고 재촉을 한다. 난 이제 안다. 지금 삼촌이 부르는 초백이는 그 옛날 깨복쟁이 유년 시절 철없이 놀리던 초백이가 아니라, 세월의 더께만치나 풍상을 겹겹이 껴입어 몽돌처럼 깎여진 조카에 대한 삼촌의 애틋하고 저린 사랑이 함께 녹아져서 부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