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글
"니가 일을 댕기지 않으면 김밥을 좀 만들어 달라고 할낀데..."
요즘 오후에 2시간짜리 알바를 다니는 나에게 시어머니는 우물우물 거리면서 미안한 듯이 먹고 싶은 김밥 얘길 에둘러 말한다. 고단수다. 그렇게 던져두면 내가 한다는 걸 잘 안다.
김밥은 시어머니가 요즘 새롭게 밀고 있는 메뉴다. 시어머니는 22년 전에 암 수술을 했다. 그 후유증으로 119로 응급실에 숱하게도 실려 다녔다. 그럴 때 마다 나도 덩달아 쫓아다녔다.
그러기를 어언 22년 차다.
그러다 보니 나도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시어머니는 아흔 살이 됐다.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은 나한테 아직도 시집살이 하냐며 안됐다는 듯이 말한다. 그럼 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복이 많아서 그렇다고. 난들 왜 짜증이 날 때가 없겠는가. 어떨 땐 공연히 이유도 없이 미워 보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일평생 가정과 자식들 위해서 꽃 같은 청춘 다 내어주고 이젠 껍질만 남아 불쌍한 뒷방 노약자인 시어머니를 난 박절하게 대하긴 싫다. 나도 이젠 내 노년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감정 이입이 되는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서 걸어 다니지도 못하시는데도 희한하게 먹고 싶은 건 건장한 장정처럼 또 많다.
시어머니의 모든 메뉴는 TV광고로 부터 나온다. 그리곤 당신이 드시고 싶은 것을 야물딱지게 메모해서 내놓는다.
치킨, 대게, ㅇㅇ추어탕.
ㅇㅇ간장게장.
잔치국수등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신다.
당신 입맛에 조금이라도 덜 맞으면 불평하신다.
"테레비 보니 게살이 꽈악 찼던데 니가 사온건 게살이 없더라."
"닭고기도 더 삶으라고 해라"
내가 게딱지를 열어보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요. 치킨을 내가 튀긴 것도 아닌데 환장할 노릇이다. 머리에 스팀이 슬슬 올라온다.
귀는 또 엄청 어두워 중요한 얘기는 필담으로 소통을 하지만 이렇게 억지소리를 할 땐 필담도 한가할 때 하는 것이지 필담에 지금 이 감정을 고스란히 담긴 어렵기 때문에 다 때려치운다. 고래고래 목에 핏대를 세워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러대며 설명한다. 그래도 못 알아들으니 모르는 사람들은 고부간에 싸움이라도 하는 줄 오해하기 딱 좋다. 손짓발짓 바디랭귀지로 떠들어도 서로 사오정이 되어 웃기지도 않는다.
나만 고함 지르느라 지쳐 씩씩대고 있는데, "야야~요샌 니가 만든 국시도 참 맛이 좋더라" 며 은근슬쩍 다른 얘기 사이에 메뉴를 꼽사리 끼워 넣는 재능을 발휘한다.
'젊을 땐 국수랑 김밥은 싫어한다고 하시지 않았나...'
어떨 땐 귀가 어두우시니 사 온 음식도 내가 한 줄 알고 고맙다며 만족한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무리 사 온 음식이라 말해도 아예 안 듣는다. 그럴 땐 나도 포기하고 내가 만든척한다. 그렇게 난 또 실력 있는 셰프가 되어있다.
오늘은 김밥이다.
김밥에 들어갈 재료는 그저께 시내 나가는 길에 몇 가지 사놨다. 시금치는 앞집 아지매 텃밭에 있는 걸 한 아름 얻었다. 벌써 꽃대가 올라오지만 부드럽고 길이도 길쭉하게 자라서 김밥용으론 다시 그만이다. 이제 속 재료는 여섯 가지로 다 준비됐다.
사실 김밥은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땐 지금처럼 다양한 속 재료가 없었다. 아니다. 다른 속 재료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기껏 해봐야 소풍 갈 때나 사주는 우리 엄마의 김밥은 자르지 않은 인절미 모양으로 두툼하게 멸치나 김치 같은 걸 넣어 만들어서 거기에 베어먹기 좋게 듬성듬성 칼집을 넣어준다. 그땐 다들 그렇게 만들어서 소풍을 갔다.
그러던 어느 해 학교에서 달리기 선수로 선발된 애들이 읍에선 제법 멀리 떨어진 도시에 있는 공설 운동장에서 열리는 큰 체육대회에 참가했는데, 난 선수도 아니면서 엄마가 싸준 김밥을 들고 혼자 응원하러 따라간 적이 있었다. 왜 그때 혼자 따라갔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가보니 시, 읍, 면 소재로 학교별로 참가하는 꽤 큰 행사였다. 그때 처음 악대부도 봤다. 학교별로 입고 나온 유니폼이나 악장의 지휘봉이 얼마나 멋있던지 그 후로도 난 오랫동안 내가 그 악대부의 악장을 하는 꿈을 꿨다. 키가 난장이 똥자루만 한 내가 될 리도 없는데 꿈만 야무지게 꾸었다.
그러다 점심때가 되었다. 선생님은 나만 빼놓고 선수들만 데리고 식사하러 가버렸다. 나 하나쯤은 같이 데려가도 될만한데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관중석엔 다른 학교에서 응원차 온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사 온 도시락을 펼치고 있었다. 난 홀로 점심을 먹으려고 두툼한 김밥을 꺼냈다. 살며시 한입 베어 물고 슬쩍 옆자리를 보니 거긴 흡사 꽃 한 다발을 그릇에 담은 듯 알록달록한 예쁜 음식이 찬합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만 보니 김밥 같았다. 근데 내 김밥이랑 완전히 다른 모양을 보고 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난 내 김밥이 부끄러워졌다. 슬며시 숨겨두고 몰래몰래 베어 물고 삼켰다. 그런 와중에 내 김밥은 눈물 나게 맛있었다. 전날 우리 집에 제사를 지냈는데, 엄마가 김밥 속을 간간한 돔배기로 넣어놨던 것이다.
눈으론 꽃 같은 남의 집 김밥을 훔쳐보면서 난 돔배기 넣은 내 김밥을 몰래몰래 다 먹었다.
그 후로도 난 김밥이 왜 꽃 모양인지 알지 못 한 체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 시간에 가사 실습으로 김밥을 만들었다.
슬프게도 엄마가 만드는 김밥 레시피는 아예 없었다. 김에 밥을 얇게 편 다음 단무지, 미나리랑 당근 등을 길쭉하게 넣고 돌돌 말았다. 선생님이 썰어서 딱 뒤집어 접시에 담는데, 아! 그게 그때 그 꽃 같은 김밥이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의 김밥은 엄마를 물리치고 신흥 강자로 급부상한 내 담당이 되었다. 요즘은 귀찮아서 더 넣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김밥 재료가 넘쳐난다.
각양각색의 기발한 김밥들이 생겨나지만, 돌이켜 보면 난 단연코 내 생애 제일 맛있었던 김밥은 돔배기 넣은 우리 엄마의 꾸밈없는 그 투박한 김밥이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이 김밥은 내 자식들은 어떻게 추억할까. 아들은 내가 만든 음식이 지입에 맞으면 "웬일로 오늘은 간이 잘 맞구먼" 하고 싱거운 소리로 곧 잘 나를 웃게 한다. 먼 훗날 내가 떠나도 나처럼 엄마를 아름답게 추억해줬음 좋겠다. 그런 바람도 양념으로 한 스푼 넣고 그렇게 난 아들이랑 같이 사랑채에 올릴 애증의 김밥에 추억도 함께 싸고 있다.
돔베기:상어고기.경상도에서 제사나 명절때 꼭 올리는 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