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엄마 글

by 비누

며칠 전 종고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잘 지내냐는 안부 전화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종고모는 잊어 버릴만하면 내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그러고 보면 종고모의 마음 씀씀이가 자랄 때부터 너그럽고 푸근했다. 그에 비해 난 밴뎅이 소갈딱지같이 소가지가 팍팍하고 뾰족했다. 그건 종고모를 향한 질투였다.

종고모가 선을 본다고 했다. 한동안 뜸하더니 이번엔 중신애비가 재종아재 ‘돌이’라고 했다. 신랑감은 아재 고등학교 친구란다. 읍내에서 철물점을 크게 하고 있으며 맏이고, 25살이라고 했다. 살림살이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부자란다.

종고모는 참 예뻤다. 동그스름한 얼굴이 배꽃처럼 희고 고왔다. 그 고운 인물은 인근 동네까지 소문이 났던 터라, 종고모 집에는 여기저기서 보내는 총각들의 구애 편지로 배달부가 늘 바쁘게 들락거렸다. 보아하니 한동네 큰 오빠 친구인 꺽다리 오빠도 종고모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이러다 보니 종고모도 자신이 예쁘다는 걸 잘 알았다.

밀짚모자 하나를 쓰더라도 머리 위에 살짝 얹어 쓰고선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폼을 내며 생긋생긋 웃어보기도 하고, 마지막엔 입술을 한번 뾰족이 내밀어보곤 했다.

종고모랑 한 살 차이로 친구처럼 지내던 나로서는 그 인기가 영 달갑지 않았다.

늘 종고모 인물에 치이다 보니 뒷전으로 밀려, 제대로 된 연애편지 한 통 받지 못하는 내 신세가 종고모 탓인 것만 같아서 속으로 애가 퉁퉁 달았다. 마음을 콩닥거리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아예 마음을 접으려고 애썼다. 어차피 안 되는걸... .

대신, 난 종다리처럼 통통 튀면서 말로써 콕콕 종고모를 쪼았다. 얄미운 종고모를 이겨 먹으려고 쓰는 얍삽한 내 무기였다.

작은오빠가 대학교 다닐 때 오빠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속으로 좋아하는 오빠 친구도 있었다. 여름철이라 사랑채에서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내 눈에는 마치 도원결의를 하는 유비, 장비, 관우가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태산처럼 듬직해 보였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뒤꼍에 있는 펌프에서 세차게 저어 올린 찬물로 미숫가루를 타서 오빠에게 내어갔다. 오빠는 체면을 세워 주는 여동생이 고마운지 얼른 받아 친구들에게로 나눠줬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안보는 척하면서 오빠 친구를 살짝 훔쳐보다가 그 오빠랑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가지런한 치아를 내보이며 웃는 그 오빠에게 화끈거리는 얼굴이 들킬까 봐 얼른 목례하고선 안채로 뛰어 들어갔다. 하필이면 그때 앞집에 사는 종고모가 물동이를 들고서 우리 집에 물을 길으러 왔다. 그 집엔 우물이 없다 보니 우리 아버지의 배려로 멀리 있는 마을 공동 우물까지 가지 않고 우리 집 펌프 물을 길어다 먹을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순간 떠들썩하던 사랑채가 고요해졌다. 그 순간 나도 알았다. 내 짝사랑도 끝장이 났다는 것을.

그 후, 난 오랫동안 마음을 웅크린 채로 몰래 한 내 짝사랑을 장사 지내느라 가슴앓이를 했다. 그러는 동안 배달부는 늘어난 편지만큼 뻔질나게 더 종고모 집을 들락거렸다.

나의 떫고 쓴 풋사랑의 기억도 가물가물 잊혀 질 즈음부터, 혼기가 찬 종고모는 역시 고운 인물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중매가 들어왔다.

종고모 모녀는 같이 선을 보러 다녔다. 선을 보고 난 뒤 종조모가 부리는 딸 유세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본인 딸 인물 정도면 판검사 자리라도 골라잡아 보낼 수 있을 거라며 턱을 치켜들고 입을 삐죽거리며 거만스레 말했다. 그러다 좀 지나니 말이 약간 바뀌었다.

“우리 숙이는 고등학교만 나왔으면 판검사라도 골라잡아 시집보낼 수 있었는데.”

라며 그놈의 학력이 모자라서 그런 자리에 시집 못 보내는 게 원통하다는 듯이 여전히 그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난 속으로 혹시라도 눈 삔 판검사가 종고모의 인물에 반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봄부터 시작된 선 자리는 혼사로 이어지지 않은 채 겨울이 오고 설이 다되었다. 요란스레 떠들던 두 모녀도 살짝 기가 죽는듯했다.

그러던 찰나에 돌이 아재의 중매가 들어온 것이었다. 선보는 날은 설 지내고 바로 사흘 뒤로 잡았다고 했다. 그날은 종고모와 내가 읍내로 볼일이 있어서 같이 나가기로 미리 약속된 날이기도 했다.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종고모가 같이 나가자고 했다. 선을 보고 난 뒤 우리 볼일을 보자고 했다.

나도 종고모의 맞선 자리가 궁금하기도 하던 차에 별다른 사양을 않고 같이 맞선 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 선은 그 남자의 철물점 안에 달린 작은방에서 노랑머리를 한 다방아가씨가 배달 온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보았다.

잠시 동안의 어색함속에서도 두 남녀는 서로를 잽싸게 훑어보는데,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그 상황이 난 너무 웃겨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그 남자는 왜소한 체구에 피부는 가무잡잡한 데다, 입은 꽁치처럼 뾰족하게 나와 있었다. 그때 왜 난 “붉은 산”에 나오는 “삵”이라는 별명의 정익호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난 종고모가 틀림없이 맘에 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긴장감 때문인지 종고모는 얼굴만 발그레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본인 손만 닳도록 비비고 있었다. 하도 답답해서 대신 내가 어색한 분위기 살린답시고 우스갯소리를 조미료 치듯이 살짝 보태줬다,

그렇게 웃기는 맞선이 끝난 뒤 밖으로 나온 종고모가 안달이 난 듯이 내게 물었다.

“니 보기엔 어떻노?”

종고모가 물었다.

“나? 나는... .”

“괜찮제?

‘엥? 이럴 수가...’ .

종고모는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난 얼른 입을 다물어 버렸다. 혹시라도 내 촉 바른 입이 산통을 깰까 봐 나오려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 후로 종고모는 지난번 맞선 볼 때와는 다르게 뭔가 전략을 바꾼 듯, 그 남자에게 꽤 적극적으로 연락도 하며, 데이트를 종종 나가는 게 보였다. 난 그게 또 꼴 보기 싫어 속이 부글거리는 게 영 불편했다. 보나 마나 꽁치 주둥이 그 남자도 종고모의 얼굴에 반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종고모가 힘아리가 하나도 없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 사람과 다 끝났다고 했다. 저쪽에서 그만두자고 중신애비인 ‘돌이’아재를 통해서 연락이 왔단다. 내가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그 선 본 남자가 그랬단다,

“아가씨가 유머도 없고 에티켓도 없어서 영 별로다”

라고 했단다, 종고모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세상을 다 잃어버린 표정 이었다,

그래서 나도 위로 한답시고

“그 남자 꼭 생긴 꼬라지가 꽁치 주둥이 같더니만 잘됐네 잘됐어”

“고모가 아깝더라“

내심 그동안 하고 싶던 말로 입이 간지러웠는데 기다렸다는 듯 질러버렸다.

난 종고모가 사립문을 벗어나기 무섭게 사랑채에 있는 작은 오빠에게 특보를 전하려고 내달았다. 오빠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묘한 웃음만 지어보였다,

종고모는 그 선 자리마저 어그러지고 나자 그때부턴 부쩍 초초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뒤 판검사가 아닌 인쇄업을 하는 남자랑 선을 보고선 곧바로 날을 잡았다, 종고모가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난 작은오빠한테서 희한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이쁜 종고모를 퇴짜 놓은 철물점 그 남자는 종고모보다 곁다리로 따라간 질녀인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단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난 9회 말 대 역전 만루 홈런을 친 기분이었다. 역전 홈런 한 방으로 고모를 이겨 먹은 기분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듯 가슴 후련하여 몇 날 며칠을 난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거리고 다녔다.

질녀 땜에 맞선 본 남자한테 뒤통수 맞은 줄은 까맣게 모르는 종고모는 복사꽃이 꿈처럼 피어오르던 그 봄에 읍내 예식장에 딸린 퍼머 약 냄새가 매캐한 허름한 낙원미장원에서 낮도깨비 같은 신부 화장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대절 택시를 타고 시집을 가버렸다,

몇 년 뒤 나도 종고모와 별반 다를 게 없이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 철물점 그 남자 보다 더 빼빼 장군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대절 택시를 타고 시집을 왔다. 그렇게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했던 우리 이십 대 청춘의 한 페이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종고모의 시집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보통은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시킨다는데 이 집엔 시아버지가 별나다고 했다. 종고모의 말을 빌리면 시아버지가 생파리같이 설친단다. 그로 인해 위기도 겪었다. 그러다 별난 시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좀 편할 만하니, 십 년 전쯤엔 고모부도 돌아가셨다,

종고모는 그래도 힘든 내색 않고, 아들 딸 다 결혼 시키고, 지금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나 역시도 사는 게 녹록치 않았다. 울퉁불퉁한 굴곡진 삶의 무게는 뾰족한 나를 철들게 했다. 허둥지둥 쫓기듯 살다 보니 어느새 우리 둘은 머리에 하얀 서리를 이고 있다. 유수 같은 세월 속에 주름도 같이 훈장처럼 달고 우린 노년의 인생 한 페이지를 또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 봄이다.

벚꽃은 흐드러지고 개나리꽃은 노랑 병아리 떼들처럼 철길을 따라 줄지어 늘어지게 피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복사꽃은 산기슭이나 후미진 둑 위에 한두 그루씩 숨어 그 옛날 종고모처럼 수줍은 듯 곱게 피어나고 있다. 저 후미진 둑에 복사꽃이 지기 전에 오늘은 내가 먼저 종고모에게 전화 한 통 넣어 안부를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