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글
어제 단톡방에 퍼온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남자는 불량품이 많다"였다. 내용인즉슨 남자는 흙으로 빚었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서 여잔 재료부터 다르고 고급품이면서 가정을 세우는 데 있어서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귀하고 귀한 존재란 거다. 거기에 비해 남잔 힘만 센 불량품이 많단 내용이다. 그러니 아내를 귀히 여기고, 시장도 같이 다니면서 힘쓰는 일은 남자가 하라는 것뿐 아니라 노년에 혼자 남는 남잔 불쌍하고 처량하기 짝이 없단 내용이었다.
육십 중반을 넘어 칠십을 바라보는 나로선 저 퍼온 글이 어쩌면 저리도 옳은 소리만 할까 싶은 게 그 글을 작성한 남편분의 깨어 있는 사고가 본인의 행복을 잘 가꾸어 가는 데 큰 지혜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 집 양반은 바쁘다. 안채에서 사랑채로 본인의 이삿짐을 시나브로 옮기는 중이다. 그동안 사랑채에 기거하시던 시어머님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지 4개월 만인 작년 연말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 방의 짐을 정리한 뒤 장판과 도배를 새로 하고 내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게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라 사실상 시어머님이 병원에 들어가시고부터 내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이었다. 어머님이 연로하시다 보니 혼자 기거하시는 게 어렵고 또 자식들이 불안해서 본가 안채를 수리해서 몇 년 전에 시골집으로 들어와서 살고 있다.
두 부부가 거실을 중간에 두고 이쪽저쪽 양쪽 방을 하나씩 쓰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고 보니 서로 엄청 편했다. 식탁에서 같이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얘기 나누다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책을 보든지 유튜브를 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어쩌다 내가 거실에서 TV를 볼라치면 남편 방에서 새어 나오는 컴퓨터나 TV 소리가 너무 커서 거실 TV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자꾸만 난 볼륨을 높이게 되는 게 여간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나중에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사랑채로 내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혹시라도 기분 나빠 할까 봐 그 앞에 먼저 복선을 깔았다. 아까운 사랑채 사람이 기거하지 않으면 금방 무너진다고.
의외로 남편은 순순히 내려간다고 했다. 본인은 어릴 적부터 사랑채에서 자고 기거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해서 사랑채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게 얼마나 다행스럽든지 속으로 난 계획대로 수월하게 잘 되어서 쾌재를 불렀다. 근데 내려가면 조용히 준비해서 내려가면 될 일을 남편은 좋아라면서 온 교회에 또 동네방네에 소문을 내는데, 그것도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녔다. 자기는 사랑채로 쫓겨난다고. 난 또 아니라고 해명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집들이도 한다고 나발을 불어 제낀다. 떡도 하냐고 물어보니 상관하지 말란다. 본인이 알아서 한단다. 기가 찬다. 가구점에 가서 책상도 새로 하나 구매를 하고 꼭 신혼살림을 차리는 듯 남편은 약간 흥분된 상태로 들떠 있었다. 그걸 보니 또 내 심사가 묘하게 뒤틀리는 건 뭔 심보인지... 그렇게 시작된 이사는 아들이 토요일 대구에서 집으로 내려오는 날 침대를 옮기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날부터 남편은 사랑채에서 잤다. 안채에 남은 나는 그 시원함에 춤이라도 출 줄 알았는데 뭔가 허전하고 이상했다. 그전에 별일 아닌 듯한 평범하게 누려온 일상에 심한 균열이 생겨 버렸다. 어느 시인이 인터뷰한 것이 생각났다. 오랜 투병 생활을 하던 그 시인의 남편은 평생을 한 번도 고맙단 말도 따뜻한 말도 건네지 않는 무뚝뚝한 남편이었단다. 그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어느 날 비가 내리자 "여보, 당신이 좋아하는 비가 와요" 하며 무심코 말을 하고 돌아보니 거기에 남편이 없음을 깨달으니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고 했다. 그 시인처럼 내가 그렇다. 그 높은 TV 소리 볼륨의 불편함이 그리움으로 밀려든다.
누가 전화 한 통만 해도 쪼르르 달려가 미주알고주알 보고하던 것이 끊어졌다. 심심하면 빼꼼 문 열고 들여다보고 킥킥대던 웃음을 잃어버렸다. 사과 한 조각 깎아서 건네주면 "고맙소"란 그 인사도 같이 사랑채로 내려가 버렸다. 갑자기 맞닥뜨린 고독과 외로움으로 내색은 못 하고 혼자서 안절부절하던 며칠이 지나고 나니 좀 낫다. 남편은 씻는 건 또 안채에 와서 씻는다. 애써 청소해 놓은 욕실은 수증기가 한가득이고 욕실화는 젖은 채 널브러져 있다. '아, 좀 거기서 씻지.' 외롭느니 어쩌니 하는 간사한 마음은 그단새 안채에 제대로 적응을 했는지 마음에 짜증을 부리려다 문득 생각이 멈춰졌다. 생각을 바꿔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살다가 이별이 온다면, 이곳에서 씻어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 날이 올 것 같아서이다.
부부는 그런 것 같다. 미워서 꼴 보기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나이를 먹고 보니 그 꼴 보기 싫음도 서로가 가슴 아리게 그리워할 날이 이를 것이다. 그냥 서로에게 있어 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고 싶다. 남편의 이사로 속 깊은 아내로 철이 드는 것 같다.
그래, 있을 때 잘하자. 아까 남편은 춥다고 군밤장수 모자를 눌러쓰고 뒷산 약수터 쪽으로 기르는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산책을 갔다. 돌아오는 남편에게 후회 없는 사랑을 하기 위해 건넬 이쁜 말을 골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