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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May 23. 2017

이런저런 냄새들

Malaysia_Kuala Lumpur

Penang, Malaysia


페낭에서 시작한 말레이시아 여행은 랑카위, 카메론하이랜드, 쿠알라룸푸르, 말라카까지였다.
보름 정도가 걸린 여정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이상하리만큼 써지지 않았고 작정이라도 한 듯 남긴 사진이 별로 없었다. 숙소에서 빈둥대는 일이 늘었고 좀 지겹다 싶으면 책을 읽거나 근처 공원을 하릴없이 걸었다. 그럴수록 손에 잡히는 건 없었고 눈길을 잡아 세우는 것도 없었다. 뭔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과 뭔가를 찍어야 한다는 압박이 동시에 정신을 어질하게 만드는 나날. 내내 몸과 정신이 초조로 몸살을 앓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쿠알라룸푸르에서 꼭 가보고 싶던 갤러리마저 발길이 닿지 않았다. 기대하던 미술관을 찾고 보니 정기휴무란 사인을 보는 심정으로 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공항 문이 열렸다. 공간이 변하자 에너지의 주파수가 바뀐, 그런 이상한 지점을 만났다. 마치 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내릴 때처럼 번쩍하고 무엇인가 변하는 그런 순간. 이리저리 바삐 걷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한 공항은 매번 살짝 가슴을 떨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등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한 대 모인 공간에선 만남과 이별이 한 솥에서 볶아지는 냄새가 난다. 비 온 뒤 스치는 촉촉한 비릿함과 노랗게 익어가는 망고의 달짝지근함 같은.
보딩 패스를 손에 쥐고 출국 심사대 앞에 서 있으면 이때부턴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가 난다. 텁텁하고 까끌까끌한 모래가 몸을 비비며 내는 그런 냄새 말이다. 정해진 길이 있을 리 없고, 길이 있다 해도 얼마 못가 바람이 길을 지워버리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고 무엇이든 영원히 그릴 수 없는 그런 붉은 모래사막 같은 냄새. 혼자 사막에서 그 냄새를 맡다 보면 와락 외로움이 몰려와 울컥해지기 딱 좋은. 딱딱한 표정으로 심사대 앞에 서 사진과 지문을 남기고 도장을 받았다. 그 사이 여권에선 미미한 잉크 냄새가 나풀 된다.
게이트 근처에 도착하자 활주로가 눈에 들어온다. 황량해 보이는 활주로 아래 띄엄띄엄 서성거림이 있다. 아스팔트 위에서 기름 냄새가 확 풍길 것 같은, 건조한 풍경이 펼쳐진다.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있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혼자이거나 연인, 친구와 함께 오롯이 떠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웅성거림, 거기에 아이 울음소리가 더해진다. 울음을 그친 아이의 얼굴에서 약간의 적막과 긴장이 흐른다. 아무 냄새도 없는 시간.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해 저녁을 해결할 적당한 식당을 찾고 있었다. 날은 후텁지근했고, 사람은 늘고 있었다. 허기보단 갈증이 먼저 몰려왔다. 거리에 길게 늘어선 좌판 중 과일주스 파는 곳 앞에 섰다.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주인은 오렌지, 우유, 얼음을 넣고 믹서를 돌렸다. 옅은 오렌지 냄새가 좌판을 맴돌다 주스가 담길 컵 안에 모여든다.
길 한쪽에서 야경을 구경하며 빨대를 빨았다. 한 반쯤 주스를 마셨을까, 부드럽고 작은 무엇인가가 주스를 들지 않은 손에 닿았다. 작은 떨림이 있는 촉감. 시선이 내 팔을 타고 흘렀다. 거기엔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 한 아이가 자기 머리 위에 있는 내 손을 올려 잡고 있었다. 아이의 손에서 마치 찌릿하고 전기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아이를 바라보았다. 순간 가뭇없던 여행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흙냄새가 날아든다.




_Photo Info
Leica M-P(typ240) + Summilux-M / 50mm ASPH

2017, Penang, Malaysia © Kim Dong Woo
CopyRight. 2017. Kim Dong Woo All Rights Reserved.
All Pictures Can 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instagram_ https://www.instagram.com/road_do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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