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os
버스에 올라보니 자리 뒤쪽이 배추로 가득했다. 기사는 검정 비닐봉지를 승객들에게 하나씩 나눠 줬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흔들거리는 버스가 라오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익숙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속을 게워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심을 빠져나온 버스는 얼마 못 가 도로를 점령한 소 떼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야 했다. 공교롭게도 버스 안에서 닭 울음이 울려 퍼졌다. 웃음이 나왔다. 한 아주머니가 들고 탄 보자기가 자꾸 꼼지락 되는 게 보였다. 아주머니는 보자기를 쓰다듬으며 내 시선을 미소로 받았다.
버스 기사는 길게 늘어선 좌판 옆에 차를 세웠다. 일정에 있는 휴게소가 아니었지만, 버스 기사는 장에 나온 사람처럼 여유롭게 나물 같은 것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재빨리 차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빼물고 한참 굽어 있던 다리를 쭉 폈다.
옆에선 한 아주머니가 송이버섯을 팔고 있었다. 송이 하나를 들어 보니 싱싱한 모양새가 근처에서 갓 따온 것 같았다. 쌉싸름한 송이 향이 풍겨오자 정신도 덩달아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시선을 조금 옮겨보니 한 바구니 안엔 개구리들이 바글바글했다. 내게도 호랑이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논두렁에서 개구리 잡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그렇게 문득 장면 하나가 도심의 삶에서 비현실이 돼 버린 옛 기억을 더듬 하게 했다.
다시 길을 달린 버스는 가다 서다 하며 승객을 태우고 내렸다. 자리가 없는 사람은 작은 의자를 받아 통로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허름한 가게 앞에 차가 섰다. 물건을 머리 위에 이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경쟁하듯 버스로 뛰어올랐다. 먹기 좋게 익은 작은 닭구이가 주렁주렁 꼬치에 꿰어 있었고 밥과 반찬이든 비닐봉지가 여럿이었다. 김이 차오른 봉지 안엔 메추리알도 있었다. 옆자리 아저씨가 도시락을 달라고 했다. 찰밥을 손으로 살살 굴려 가며 새알처럼 만드는 기술에 쉬 눈을 떼지 못했다.
버스는 연하게 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한참을 달렸다. 긴 버스 여행이 힘들긴 했나 보다. 버스 안에서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바로 옷을 올려 젖을 물렸다. 순간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렇게 낯선 풍경은 금세 안락의자처럼 편안해졌다.
엄마의 약손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어쩜 비현실이 돼 버린 흑백 기억을 알록달록한 빛깔로 보여주는 나라, 라오스.
Leica M-P(typ240) + Summicron-M / 28mm ASPH
2017, 13 Road, Raos ⓒ Kim Do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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