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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Apr 13. 2017

여행 그래서 그리움

Bali_Indonesia



발리 꾸따는 정녕 머릿속에 그리던 모습은 아니었다.
대형 쇼핑몰과 길거리에 길게 늘어선 상점은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거나 허세 낀 사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어깨를 맞대고 덩치를 자랑하는 대형 식당은 어느 나라를 여행하는지 조차 종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내겐 모든 게 어질어질했다. 목격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허상이 무엇인지 첫 여정이 잘 가르쳐주고 있는 셈이었다. 여행은 가끔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올려보다 문득 깨닫게 되는 소소한 것들이 갖는 의미처럼 아주 가까이 또는 아주 멀리서 날 바라본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지조차 모른 채 배낭에 카메라를 넣고 떠나지 않으면 우울을 겪어야만 했던 내게 여행은 또다시 도망을 강요했다. 꾸따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물가는 싸다. 어디까지나 현지인들의 물가를 외국인에게 똑같이 적용하다면 말이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우버 택시를 불렀다. 길거리 택시를 불러 흥정한다고 해도 이보다 싼값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스마트폰에서 예약 버튼을 눌렀다. 친절한 기사는 편안하고 안전하게 꾸따에서 우붓까지 날 데려다줬다. 마치 친구의 차를 탄 것 마냥 이런저런 이야기로 낯선 여행지의 불안을 덮어준다.
도심을 빠져나오자 기분이 좀 나아진다. 하지만 기분이 들뜨기엔 뭔가 부족하다.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인지도, 집을 떠나온 지 며칠 되지 않은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그리움이라면 십중팔구 두고 온 사람에 대한 허전함일 거다. 집을 나서 버스정류장까지 왔는데 주머니에 들어 있지 않은 스마트폰처럼 아차 싶은 사람들. 사람이 좋다. 좋은 만큼 그립다. 그래서 사람이 좋다가 싫다. 그러다 또 싫다가 한없이 눈시울이 젖을 것처럼 그들이 어른거린다. 사람 때문에 불에 덴 듯한 아픈 상처가 생기면 오래오래 그 흔적이 마음속을 할퀴는데도 말이다.
이번 여행을 출발하기 전 공항에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친구의 아이가 유산됐다는 내용이었다. 녀석의 짐작되는 목소리가 괜히 미안해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끝내 비행기에 그냥 올랐다. 우린 그렇게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결혼을 앞둔 친구는 얼마 전 미리 아이가 생겼다며 놀랍고 축하해야 할 사실을 조심스레 알렸다. 겸연쩍어했지만 눈빛에는 기대와 기쁨이 가득했다.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며 내심 기대에 차있던 녀석. 술자리는 길게 이어졌고, 자정을 넘겨 이별까지도 녀석은 아들 타령을 했다. 그렇게 기쁨에 찬 표정을 녀석의 얼굴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읽었다. 
‘가만히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고 흉터가 희미해지길 기다려야 해.’ 내가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다. 애석한 일이지만. 
악수는커녕, 전화 한 통화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보지 못할 녀석의 풀죽은 목소리가 발리의 바람을 타고 흐른다. 맞다 사람은 좋아도 싫어도 마음을 할퀸다. 이래도 저래도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 그나마 할머니 집 구석에 담요로 덮여 있는 아랫목처럼 훈훈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사람을 포기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욕이 나와도 짜증이 나도, 결국 사람의 정을 난 버리지 못할 것 같다.




_Photo Info
Leica M-P(typ240) + Summilux-M 1:1.4 / 50mm ASPH
2017, Kuta Bali ⓒ Kim Dong Woo
CopyRight. 2017. Kim Dong Woo All Rights Reserved.
All Pictures Can 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instagram_ https://www.instagram.com/road_do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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