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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Apr 22. 2017

풍경보다 더 드라마틱한

JAVA_Indonesia


걷다 보면 풍경들이 말을 걸어온다. 도심을 빠져나오면 풍경의 소곤거림이 더욱 또렷해진다. 내가 짐을 싸는 이유 중 하나다. 이는 떠나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갈망이자 소망이다.


인도네시아 이젠 화산을 새벽녘에 오르고 있을 때다. 연하게 산속으로 이어지던 길이 갑자기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산을 원망이라도 하듯 거칠고 더운 숨을 한없이 몰아쉬었다. 끝 모를 고갯길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모르는 편이 나아 보였다.

이젠 화산은 세계에서 딱 2곳에서만 목격할 수 있는 블루파이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새벽녘 산에 올라야 유황가스가 파랗게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다.

길은 비탈을 지나 산허리를 돌며 이어졌다. 그 사이 어둠 속에서 기습이라도 하듯 유황가스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을 덮쳤다. 가이드는 출발 전 나눠 준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 유황가스가 온몸을 휘감자 마스크 틈 사이로 메케한 냄새가 스며 들었다. 그렇게 뿌연 가스 사이를 헤쳐 나오자 블루파이어를 볼 수 있는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동이 트고 화산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분화구엔 백두산 천지처럼 파란 에메랄드빛 호수가 자리 잡고 있고, 한쪽에선 유황가스가 쉼 없이 분출되고 있었다. 인간의 접근이 허락될 것 같지 않은 그곳에서 놀랍게도 몇몇 인부가 유황을 채굴하고 있었다. 한 인부가 자기 몸무게보다 더 나갈 것 같은 유황을 어깨에 메고 비틀비틀 산을 오른다. 그가 이렇게 일해 받는 임금은 우리 돈으로 하루 1만 5000원 정도.


멋진 풍경을 찾아 한창 산을 찾을 때, 계절에 따라 좋다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산이 하던 이야기는 미(美)에 대한 것이었을게다. 이젠 화산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을 걸어왔다. 드라마틱한 풍경보다 더 드라마틱해서 조금은 먹먹한, 얇은 두 다리의 허정거리는 걸음과 휘어져 버린 어깨가 삶을 대신해 하는 이야기….





_Photo Info
Leica M-P(typ240) + Summicron-M /  28mm ASPH

                                     Summilux-M / 50mm ASPH
2017, Kawah Ijen JAVA ⓒ Kim Dong Woo
CopyRight. 2017. Kim Dong Woo All Rights Reserved.
All Pictures Can 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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