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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Apr 25. 2017

부산 인도네시안

JAVA_Indonesia


예전 회사의 한 높으신 분은 나를 돈키호테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매일 마주하는 회사 책상처럼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또 배낭을 메고 보니 그 말이 맞을지 모른단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떠나야 하는지 묻는 친구들이 있다. 어쩔 때는 웃어넘기려 사주가 그렇다고 하고, 어쩔 때는 도시가 답답하다는 동의를 구하고, 어쩔 때는 조금 마음을 담아 원 없이 글 쓰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모든 이유가 맞을 수도 있고, 딱 맞는 정답이 없는지 모르겠다. 뒤를 돌아보고 운전을 할 수 없듯, 또는 뒤를 너무 돌아보면 사고가 나듯 그저 인생의 흐름에 단순하게 몰입하고 싶을 뿐이다. 최소한 여행은 내게 과거에 취해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내버려 두진 않는다.
떠나야 사는 유별난 사람이 하는 생각.

발리 덴파사르에서 자바섬의 첫 번째 여행지 바뉴왕기행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고 보니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내국·외국인 물가가 다른 나라 중 하나다. 내가 낸 금액이 맞는지, 아니 맞지 않아도 너무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닌지 기분이 썩 깔끔하지 못했다. 비뚜름하게 자리에 앉아 무심히 노안이 온 것 같은 창문을 바라봤다.
버스가 시끌벅적한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서서히 풍경이 자리를 옮기며 속도를 올렸다. 그때 누군가 가만사뿐 내 팔을 건드렸다. 흠칫 고개를 돌려 보니 반대편에 앉아있던 험수룩한 현지인이었다.
그는 내게 영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지어도 아닌 낯설면서도 아주 친숙한 말을 내뱉었다. 가만히 몇 번 그의 말을 들어 보니 분명 한국어였다. 발음이 분명하진 않았지만 이건 평생 내가 듣고 살아온 말이었다. 말이 통한다는 건 소리 없이 많은 걸 이해시키고, 이해받을 수 있게 만든다. 때론 이게 가시처럼 사람을 아프게 하지만.
흠칫 놀란 난 “아저씨, 한국, 외국 사람, 한국 사람, 가격, 똑같아요. 인도네시아 달라요.”라고 물었고,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인도네시아 사람, 좋아, 괜찮아, 착해.”

그의 이름은 수파르만. 
부산 근처에 있는 벽돌공장에서 몇 년간 노동자로 일했고 그 시간이 아주 곤곤했다는 사람. 
그래도 기 시간이 돈을 많이 벌게 해주었다며 달뜬 표정을 지울 줄 아는 사내.
공장장이 주말이면 숙소에만 있지 말고 여행을 다니라고 했다는 이야기로 따뜻함을 나눌 줄 아는 남자. 
휴대폰에 있는 부인과 자녀들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
그리고 대화 내내 혹 한국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조릿조릿한 마음으로 그의 눈빛을 살핀 여행자.

버스가 어느새 발리섬에서 자바섬으로 넘어가기 위해 페리에 올랐다. 처음처럼 수파르만은 가만사뿐 내 팔을 건드렸다. 버스에서 나가자는 이야기였다. 그를 쫓아 페리 2층으로 올라가니, 우리나라의 도서지역을 연결하는 페리처럼 2층은 승객용 휴게실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휴게실 앞뒤에선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수파르만이 밖에 나갔다 오라며 팔을 끌어당겼다. 그의 손짓을 따라 나가보니 페리가 서서히 포말을 일으키며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햇살 아래 엽렵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뱃놀이를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수파르만은 의자에 길게 누워 선잠을 청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배와 한 몸인 것처럼 편안하게. 유난히 넓어 보이는 그의 등이 소리 없이 들썩인다. 곤하고 곤한 잠에 빠진 것처럼 풀썩풀썩.
남겨 놓은 온 것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돌아가면 제자리에 없는 건 아닌가 하고 얼마나 초조했을까. 그리움을 지우고 또 지우며 얼마나 끙끙거렸을까. 난 그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나. 미동 없는 등이 질책하듯 묻는다. 페리가 자바섬에 도착했다. 수파르만은 내릴 곳이라며 마지막까지 나를 챙겨주었다. 악수를 하고 버스에서 내려 노안이 온 창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희미해져 간다.




_Photo Info
Leica M-P(typ240) + Summilux-M / 50mm ASPH
2017, Candidasa, Bali ⓒ Kim Dong Woo
CopyRight. 2017. Kim Dong Woo All Rights Reserved.
All Pictures Can 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instagram_ https://www.instagram.com/road_do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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