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a
사진을 배우다 만난 선배가 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사이였는데 알고 보니 사는 곳이 한동네였다. 그 덕에 집 앞에서 자주 얼굴을 보게 됐다. 그것도 모자라 모임이 있는 날이면 서울에서 고양시로 가는 버스까지 함께 타야 했다. 그럴 때면 버스 안에서 사진에 대해 궁금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었던 나.
동네에 도착할 때쯤이면 우리 둘은 취기가 빠져 어쩔 수 없이 생맥주를 한잔 더 해야 했다. 그러다 어떤 날은 아프디아픈 채찍으로 힘 빠진 다리를 더 풀리게 했고, 또 어떤 날은 자상한 옆집 형처럼 따뜻한 응원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던 사람. 그리고 나에게 꼭 술을 사게 했던 날들.
어느 일요일 저녁 선배를 불러냈다.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 선배와 파전에 막걸리를 마셨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막걸리 두 통을 비우고 술집을 나서보니 검은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만 한잔 더 하자는 말에 들어갔던 선술집에서 소주 두세 잔을 마시다 말고 내뱉은 선배의 말.
“나, 이쯤에서 가봐야 할 것 같다”
“벌써 집에요? 아직 비 많이 와요.”
“아니, 광화문에.”
“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세월호 유족들 텐트 괜찮은지 모르겠다. 집에 가서 카메라 좀 챙겨 가봐야겠다. 맘이 좀 그래.”
“지금 서울 나가면 막차 끊길 텐데요.”
“첫차 타지 뭐.”
어디서 구했는지 신문지를 머리에 쓰고 잰걸음으로 빗속을 달렸던 선배.
한동안 선배가 사라질 때까지 눈 배웅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
“사진이 안 될 땐 넓게 찍어봐. 그게, 뭐가 됐든, 그냥 지금처럼만 돌아오면 돼.”
또 한 번 긴 여행을 떠난다는 내게
선배가 새벽녘 공덕동 골목 술집에서 했던,
막막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
선배는 왜,
한 발 더 들어가 찍으라고 하지 않고,
한 발 더 내디디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날의 추억이 떠오르는 인도 마날리의 비 오는 날 씀.
_Photo Info
Leica M-P(typ240) + Summilux-M 1:1.4 / 50mm ASPH
2017, Manali, India © Kim Do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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