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들
가을은 색으로 속삭이는 계절이에요. 하늘이 높고 맑아 보이는 길을 걷다 단풍잎 하나를 주워 들었을 때, 눈길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그 사이 어딘가의 색. 애매한 빛깔이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겼지요.
단풍잎이 그렇게 물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계절이 깊어지면 낮은 기온과 짧아진 햇살에 반응해 잎은 서서히 광합성을 줄입니다. 그 과정에서 엽록소가 사라지고, 그동안 숨어 있던 노랑과 붉은빛이 모습을 드러내죠. 결국 단풍은 새로운 색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있던 것을 세상 밖으로 보여주는 셈이에요.
그 사실을 떠올리며 잎을 바라보니 마음이 이상하게도 찡해졌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멈추어 설 때, 서두르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빛이 드러나곤 합니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더하지 않아도 괜찮은 색. 분주한 하루 속에서는 가려져 있던 진짜 내 마음이 가을빛처럼 은근히 스며 나오는 순간이 있지요.
우리는 종종 여러 얼굴을 입고 살아갑니다. 밝은 표정, 아무렇지 않은 태도, 늘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하지만 단풍이 알려주듯, 쉬어가는 시기가 오히려 더 선명한 나를 보여주는 시간이 될 수 있어요.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내 색이 가장 진하고 깊을 때가 있습니다.
단풍잎 하나를 손에 쥐며 배운 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빛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바라봐 주는 일.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내 시선이 머물러 줄 때, 내 마음의 빛깔은 비로소 온전히 빛을 얻습니다.
오늘 당신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빛이 은근히 드러나고 있을지 몰라요.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오직 당신만의 색. 그 색은 지금도 조용히 피어나며 당신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을 겁니다.
당신 안의 고유한 빛은 지금도 조용히 자라고 있어요. - 온마음실험실 -